과거로의 여행
하노이에 도착해서 느낀 첫 느낌은 '덥다' 였어. 공항에서 딱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덥고 습한 공기가 느껴지는 게 사우나에 들어온 기분이더라.
하노이에서 10월은 덜 더운 달이라고 하는데, 더울 때는 얼마나 더 더울지 상상이 안돼. 사계절이 있는 한국의 날씨는 축복이야.
공항을 지나 하노이 도시로 오면, 한국의 70~80년대 거리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져. 그 시절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사진 속에서 봤던 과거 서울의 모습이야. 거리마다 길게 늘어진 전선줄, 골목골목 놓여 있는 목욕탕 의자, 거리의 지린내.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왜소한 모습의 베트남 사람들. 마치 비행기를 타고 5시간을 날아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야.
# 하노이 거리풍경1 _ 거리의 소음
하노이의 거리로 나가면 수 많은 오토바이, 차들이 경적을 울려.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빠앙 빠앙' 하는 앙칼진 소리가 귓가에서 멈추질 않아.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만들어내는 매연과 찌는 듯한 더위에 경적소리까지 더해지자, 하노이를 여행지로 선택하게 잘못된 선택이었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혹시나 경적소리를 듣지 못해 오토바이에 치일까 봐 이어폰을 끼지는 못하겠더라.
시끄러운 소음을 피해, 점심을 먹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어. 그런데 택시 안에서도 경적소리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아. 오히려 외부의 소음과 택시 기사가 울려 되는 경적 소리가 합쳐져, 소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
이제 막 비행을 마치고 온 직후여서 그런지, 더 이상은 그 소음이 견디기 힘들어 한숨을 쉬며 가방 속의 이어폰을 꺼냈어.
“많이 시끄럽지? 하노이를 처음 찾는 사람들에겐 낯선 풍경인가 봐.”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깡마른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어. 그의 말에 난 살짝 웃으며 조금 그런 것 같아 라고 짧게 답했어.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이유는 내가 여기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야. 이게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이거든."
한국처럼 길 좀 비키라고 짜증스럽게 누르는 경적이 아니라, 단지 내가 여기 앞에 있음을 타인에게 알리려는 의도의 경적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짜증만 낸 거야.
서툰 영어로 설명하던 그 소년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정말 오만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난 ‘왜 이렇게 베트남 사람들은 참을성이 없는 거야’ 라고 생각했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국민성과 국가의 발전 정도를 연관 지어 폄하했어.
남의 의도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듣고 싶은 데로만 듣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택시를 운전하는 소년에게도, 하노이에게도 미안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나 라는 반성을 하지만, 그땐 모든 게 짜증이 난 상태였어. 같이 오기로 했던 너는 없지,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지, 하노이는 너무 덥고 시끄러웠지.
그 후에도 여전히 하노이 거리는 시끄러웠지만, 그 말을 들은 후엔 이것이 하노이다 라고 받아들이게 됐어.
# 하노이 거리풍경2_ 오토바이
베트남인에게 오토바이는 거의 필수 생활용품이야. 베트남은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미비하고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선 거의 차 한 대 값의 비용을 세금으로 지불해야 해서, 한국에 비해 자동차 가격이 2배 정도 비싸. 쌀국수 한 그릇에 2,000원 하는 베트남 물가를 생각했을 때 자동차는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는 구입하기 힘든 거지.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야.
오토바이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삶을 묘사할 수 없어. 그들에겐 단순한 교통수단보다 더 큰 의미가 있거든.
오토바이는 그들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며,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이기도 해. 오토바이를 통해 돈을 벌고, 그 위해서 휴식을 취하기는 것처럼, 오토바이가 삶의 일부가 된 거야.
시끄럽고 매캐한 공기를 만들어 내는 오토바이가 처음에는 너무 싫었어. 오토바이만 없으면 좀 더 쾌적하게 하노이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조금 지내다 보니, 오토바이가 없으면 베트남이 베트남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그마한 오토바이를 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들, 그것이 베트남의 낭만이지.
아, 처음 베트남에 왔다면 길을 건너는 일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거야. 수 십대의 오토바이가 끝임 없이 지나다니고 횡단보도도 많이 없어.
그래서 처음엔 거리를 건너는 일이 너무 무서웠어. 바로 코앞으로 오토바이가 지나다니니까 까딱 잘못하다 가는 오토바이에 치일 것 같았거든. 그런 상황에서도 베트남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건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 오토바이가 오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니까.
근데 그것도 하루가 지나니까 적응이 되더라. 앞만 보고 거리를 건너면 오토바이들이 날 알아서 피해가. 오히려 길을 건너다가 걸음을 멈추거나 뛰면 더 위험해진대.
여기선 건널목을 건널 때, 절대 옆을 쳐다봐서는 안돼!
# 하노이 거리풍경3_ 거리의 이발소
하노이의 거리에서는 거울과 의자 하나만 있으면 그 순간 거리의 이발소가 탄상해. 머리 위로 내리 째는 땡볕을 막을 천막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릴 칸막이도 없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아.
손님이 앉으면 이발사는 천을 두르고 정성껏 이발을 시작해. 왠지 이곳에서 머리를 자르면 평범한 스타일이 나오진 않을 거 같아. 하지만 내가 남자였다고 해도 섣불리 시도해보진 못할 거 같아.
베트남의 이런 풍경은 내게 존재하지도 않은 향수를 자극시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거친 동시에 아기자기해.
# 하노이 거리풍경4 _ 목욕탕 의자
오토바이 매연으로 쾌쾌한 거리 대부분에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있어. 그들은 일명 목욕탕 의자로고 불리는 자그마한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먹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어.
아마 이 의자는 체구가 자그마한 베트남 사람들이기에 사용이 가능할거야. 남성 평균키가 180cm가 훌쩍 넘는 네덜란드인은 저런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그 불편한 자리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면, 걱정 없이 편안해 보여. 시원한 에어컨,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소파, 은은한 조명이 없어도 저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이니까.
실제 베트남의 행복지수는 아시아 국가들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데. 정말 행복은 상대적인 건가 봐. 한국의 환경보다 나아 보이지 않은 이곳에 사는 그들이 더 행복한걸 보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