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계절에 대한 수필
가을이라는 계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으면 풍요로움과 쓸쓸함이라는 상반되는 심상이 공존하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어느 계절이든 간에 사로 대치되는 요소들을 갖고 있지만, 유독 가을은 마음까지 물들이는 것 같은 새파란 하늘과 시들어서 뚝뚝 떨어진 뒤 바스러지는 검붉은 낙엽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상승과 하강이 동시에 느껴지는 시기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직 한해가 끝나기에는 2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저녁 6시만 되어도 깜깜해진 하늘에 서늘한 달만 고요히 빛나고 그 아래를 쌀쌀한 바람과 함께 걷다보면 1년이라는 시간의 끝자락에 당도했다는 감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간의 끝에서는 누구든 간에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이켜 보게 되고, 대부분은 '이 긴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한 것일까' 라던가 '좀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라는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흐른 시간에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아직은 남아있는 해를 어떻게 해야 무탈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취업이라는 것을 과연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워 걱정하느라 울곤 했던 2022년의 여름으로부터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운좋게 어떤 집단에서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나는 여러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스스로의 서툶에 진절머리 나면서도 어떻게든 눈물을 닦고 일어나 묵묵히 걸어간 내가 무척 대견하다. 무언가를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냥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도 더 열정있는 사람도 반드시 있었지만 지속 하는 것은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연속해서 이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가장 좋은 순간과 가장 나쁜 순간을 분별짓기 어렵다. 계절이 돌고 돌아 반복되는 것처럼 보람도 있고 좌절도 있었다. 햇살이 내리쬐며 꽃이 피어나는 순간도 먹구름이 몰려워 빗물이 넘치는 것도 모두 내 시간의 일부였다. 그렇게 봄과 여름을 지나오며 가을에 도달하는 순간에 문득 '내가 봄도 여름을 거쳐왔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가을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기에 적합한 계절인 것 같다.
사계절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칭하다 보니 겨울이 계절의 끝인가 싶지만, 사실 겨울은 마무리라고 하기 보다는 끝과 시작 사이에 놓인 공백의 시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문단으로 비유한다면 마지막 문장과 그 다음 문단의 첫 문장 사이의 빈 여백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 공간은 하얗게 빛나는 눈밭을 연상하게 한다.
반면 가을은 끝맺음 문장과 비슷하다. 가을에는 열매가 잘 익어 단단히 여물고 나뭇잎도 깊은 색을 더해간다. 돋아나고 자라나고 피어난 식물들이 각자만의 결실을 맺는다. 마치 첫 생각을 담아낸 문장으로 시작해 서서히 고조되어 하나의 큰 결론으로 매듭짓는 것과 비슷하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깊게 담긴 마지막 결론은 읽는 이로 하여금 곰곰히 사색에 빠지게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읽었는지, 그리고 이 문장 속 여정의 마지막에서 나는 어떤 깊이에 도달했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을이 반성하고 자책하는 계절이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처음에도 말했듯 가을은 상승과 하강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계절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 들지는 모를지언정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게 비치고 있고, 고독감에 찬비처럼 젖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공원을 거닐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설령 무언가 큰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에게 많은 기쁨도 슬픔도 함께했던 한해였음을 다시금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다.
시간이 다해가는 것을 느낄수록 허무감과 회한에 빠지기 쉬운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밟을 때 고독감 뿐만 아니라 그 잎사귀에 담겨있는 햇빛이 익은 흔적에도 마음을 둘 수 있는 시기가 되길 바란다. 끝이 나버렸다는 안타까움 보다는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해온 마음가짐을 정갈하고 소담히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역시 가을은 갈무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