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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23. 2021

코로나와 싸운다 (9) - 난로로 녹일 수 있는 것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대응일지 - 난로로 녹일 수 있는 것

2021년 1월 14일 목요일


어제 한파를 맞으며 K형님이 이직 준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로 출근했다. 추위는 여전히 곁을 맴돌았고 지금 같아서는 2월이 와도, 아니 3월이 와도 영원토록 바람이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보건소에 건의했다. 정확히 말하면 선별진료소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 장문의 건의문을 올렸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내 성격이 불같아서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또는 건의 자체를 고깝게 여겨 괜히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동료와 보건소 직원 간의 관계가 악화되어 근무하기가 껄끄러워지진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 해결을 해볼까도 생각했다.     


한파에 직격탄을 맞는 것은 안내에 투입되는 요원이다. 접수요원들은 부스 안에서 난로를 쬐면서 근무하기 때문에 추위에 견디기가 훨씬 수월하다. 처음에는 청원경찰들 끼리도 접수와 안내를 번갈아가며 투입하여 견디기가 수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청원경찰들은 안내 임무로 고정되었다. 선별진료소에 투입되는 인원의 수가 많아지면서 임무를 순환할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었다. 사람은 많아졌는데 청원경찰들의 근무환경은 열악해진 모순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기존 근무자들에게 순환 근무를 하자고 건의도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니었다. 결국은 누군가가 특정 시간마다 안내를 담당하여 추위로 내몰리게 되는 모양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안내자들의 자리에 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단톡방에 고심하여 글을 올렸다. 말보다는 글이 낫겠다 싶었다. 시청과 보건소에 대한 원망이 터질까 싶어 감정을 숨기고 원만히 일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글자에도 고심하여 함께 선별진료소에서 고생하는 임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글로 운을 띄웠다. 그리고 선별진료소에 투입하는 안내자들이 임무수행을 하는 데 난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적었다. 혹시 난로를 투입할 자원이 없다면 다른 대안을 알려주어도 고맙겠다며 마무리를 했다.     


글을 다 적어놓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단톡방만을 지켜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답장이 빨리 와서 놀랐다. 가장 먼저 선별진료소 TF(선별진료소는 보건소의 모든 부서를 초월하여 돌아가며 총괄을 담당하고 모든 부서의 인원이 지원한다) 총괄담당자가 답장했다. 본인은 선별진료소에 충분히 난로가 있는 줄 알았으며, 현재 난로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파악한 후 연락을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자들의 자리 두 곳에 배치할 난로를 임대했으니 내일 중으로 도착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조금은 허탈했다. 이렇게 빨리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그 긴 시간을 추위로, 또 마음속으로 고통받고 있었을까. 근무가 끝나자마자 검체요원과 접수요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와 잘된 일이라고 한다. 추위에 떨며 야외에서 일하는 모습이 항상 안쓰러웠다는 것이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악의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불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접수요원들은 우리를 외면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민원인들이 없을 때마다 틈틈이 나에게 난로로 몸을 녹이라고 권했다.     


그리고 총괄 담당자는 현장일 외에도 신경 쓸 일이 태산일 것이다. 예산확보, 임시선별진료소 운영, 인력확보, 지출결의, 재고관리 등. 그 수많은 사항 중에 안내요원이 추위는 본인들이 상황을 얘기하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정작 나 혼자서만 몇 가지의 오해가 쌓인 걸지도 모른다. 보건소에서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한다고 말이다.     


사람과 하는 일은 다른 사람보다 나의 마음을 다루는 일이 어려운 것 같다. 타인은 내가 규정한 대로 내게 행동한다. 선의를 가지고 그들의 상황과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가고,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애초에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색을 살피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배신당하거나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 길을 돌아가니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나는 내 동료들을 믿고 있을까, 아니면 불신하고 있을까. 이번 일 한 번으로 쉽게 마음을 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믿으려고 노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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