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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Jan 16. 2020

토요일 연장근무, 그리고 리마인더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

지난 토요일이었다. 오래간만에 토요일 연장근무를 신청하였더니, 왠걸 9시간 근무를 배정받았다. 거기다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새 버스를 배정받았다. 새 버스라 함은 어제 출고가 된 버스가 아니고, 10만 킬로 미만을 주행한 버스를 말하는 것이다. 주에 절반은 백만 킬로 이상을 주행한 버스를, 나머지 절반은 오십만에서 백만 킬로 사이 정도를 배정받는다. 멜번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고지이다 보니, 대대적으로 신차로 바꾸는 것이 주정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뿐더러, 인구폭발을 감당하는 주변 신도시 지역의 신규 노선에는 실제 새로운 버스가 투입되어야 하니, 오래된 지역의 규모가 큰 내가 일하는 돈카스터 차고지는 가장 후순위이다. 그 와중에 35000킬로 정도 뛴 버스를 만난다는 것은, 기적은 아니고, 기적 바로 아래 정도의 확률로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타 차고지에서 잠시 맡겨둔 것이리라.

차고지에 우수한 수준의 자체 정비팀을 보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30년 육박하는 벤츠버스도 장점이 많아 가끔은 운전이 즐겁기도 하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휠체어 램프가 버튼 하나로 작동된다는 것과 차량 승차부를 낮춰서 신체거동이 좀 불편한 승객, 바퀴 달린 유모차나 보행보조기구 등을 가진 승객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버스들도 모두 설치가 되어있지만, 램프는 기사가 내려서 직접 손으로 설치 해야 하는 약간의 부지런함이 필요하고, 차량을 내리는 기능은 오르락내리락 속도가 느리고 미작동 할 때가 많아 짜증 날 때가 많다. 그런데 이날 배정받은 새 버스는 모든 기능이 완벽 그 자체로 작동한다. 스트레스가 없는 거다. 거기다 승차감은 구름을 탄 기분이라고 할까? 세상에, 소음도 거의 없다.

버스에 오르면서부터 산불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어르신 승객이 하차 때는 버스가 새것이라며 너무 좋다고 1분 이상을 이야기한다. 주말에 주거지역 노선이다 보니 승객도 적고, 나도 유쾌하게 호주 산불에 관해 이야기하고, 새 버스에 대해서 응대를 해주었다.


나무가 울창한 한 동네를 지나는데, 상당한 덩치를 가진 어린 여자 승객과 그 뒤로 깡마르고 지친 표정의 남자 승객이 버스에 오른다. 천천히 출발하는 버스의 엔진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여자의 목고리가 귀를 울린다. 어지간하면 그냥 대화하나 보다 싶은데, 대화 소리가 너무 큰지 또렷하게 무슨 이야기하는지가 다 들린다. 뭔가 구독한 영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아 그에 대해 어떻게 할지 누군가에게 계속 다그쳐 묻고 있다. 그러면 안되고, 그러지 않기로 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도, 아까 그 여자 승객일 거라 단언해버린다. 속으로 역시 보자마자 알아본 진상이라 버스에서 시끄러운 것이라 단정한다. 몇 없는 다른 승객들이 참으로 짜증 나겠으니, 운행을 좀 더 조심히 해야겠다고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이 여자 승객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실제 커진 건지, 나의 머리에 거슬리게 들리다 보니 더 커지게 들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하튼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차벨이 울렸다. 앞문과 옆문, 두 개를 다 열고나니 쿵쿵 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앞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그 쿵쿵 소리를 데시벨 높은 아까 그 목소리가 완전히 덮어버린다. 그리고 앞문으로 소리가 사라진다. 곧바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하지 못하나,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 내 여자 형제가 컨디션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좋은 하루 보내라. 그러면서 내린다. 엉겁결에 너도 좋은 하루 보내라라고만 대답하고 문을 닫았다.


호주라는 땅에 이민자로서 살면서, 나는 수많은 선입견과 싸우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했으며, 수긍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런 선입견이 작동할 상황에서 상대의 선입견이 전혀 없음을 파악한 경우도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라도, 선입견 없이 살아가려고, 다가가려고 특별히 더 신경을 쓴다. 아내가 당신은 좀 심하다 할 정도로 '선입견'은 금지품목이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잠시 나오는 선입견을 대변하는 단어를 사용하다가 아이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아차 하면서 다음에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내가 또 그 실수를 하고 말았네.


모르긴 몰라도, 증상을 가진 형제와 동행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일 것이다. 여러 곳에서 버텨내야 하는 눈총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다른 버스 승객에게 일일이 사과하는 수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만, 버스기사에게 대표 사과를 하고 내리는 그 남자 승객의 뒷모습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1초 만에 투입해주었다.


한국에서의 장애인 인구는 호주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호주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경우는 허다한 일이다. 바꿔서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그런 장애인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내가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에 대한 편의시설, 특별하지도 않은 시설조차도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입견, 편견을 버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받아들이고, 서로 미소로 그 사람들 모두를 수긍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버스에 아직 빈자리가 많다. 더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로 버스를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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