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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Feb 06. 2020

나는 왜 호주로 왔는가

호부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왜 호주로 왔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왔다. 아직도 그 질문은 수시로 받는 편이다. 호주인, 어쩌면 나보다 먼저 이 땅에 정착한 자들이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질문자들은 아주 어릴 때 이미 그들의 부모덕에 정착을 하였거나, 여기서 태어난 자들일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들은 이미 이전에 살고 있었으니, 이후에 이 땅에 이민을 온 너는 무슨 이유로 여기를 선택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할 것이다. 궁금하지 않다 하여도, 이 질문은, 처음 알게 된 사람에게 꽤 쉬운 방법으로 말을 끌어내기에는 적절한 질문이기도 하다.


왜 호주로 왔는가? 수차례에 걸친 문답으로 인해, 나의 대답은 좀 정해져 있는 편이다. 처음 하는 말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와 조그마한 자식들을 데리고 정든 땅을 떠나 말과 문화가 다른 곳으로 영주비자도 없이 떠나겠다고 결정을 하는데,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면 나의 결정은 언제든 뒤집힐 만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유, 아주 큰 이유들도 있었고 아주 사소한 이유들도 있었다. 웃자고 대답하자면, 와인 마시기 좋은 곳이라 선택했다고도 하고, 망고가 맛있어서 왔다고도 한다.


나 같은 사람, 음주가 취미인 사람들 중에서도 와인을 비롯한 좀 더 다양한 주종을 경험해보자면, 호주가 어떤 면에서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그 중에서도 와인은 절대로 그렇다. '어떤 와인이 한국에서는 얼마인데 호주에선 얼마이다'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좀 더 많은 다양한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의미이다. 언제 기회가 있다면 와인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써봐야겠다.


망고는 진짜 맛있다. 지금 한창 망고 시즌이 지나고 있고  거의 끝물이 온 것 같다. 커다란 망고를 삼등분하여 씨가 없는 쪽은 아이들과 아내, 누구든 대접받을 사람을 주고 나는 씨가 있는 중간 부분을 택한다. 누가 말하기를 씨 깨끗하게 발라먹기 대회가 있다면 내가 꼭 나가봐야 한단다. 그만큼 씨를 깨끗하게 발라 먹는데, 그렇게 맛있는 걸 죽어도 못 버리겠다는 생각이 항상 꽉 차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소갈비도 깨끗하게, 닭다리도 깨끗하게 발골하는 편이긴 하다. 다시 말해, 이 맛있는 과일은 내가 호주에 살지 않았다면 쉽게 즐길 수 있는 과일은 아니었으리라. 호주 산다는 것이 축복이라도 철마다 일깨워주는 과일이 바로 이 망고이다.


왜 호주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가? 조금 더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면, 나의 아이들에게 좀 더 다른 기회를 주고자 이곳에 왔다. 한국에서 자랄 아이들과 호주에서 자랄 아이들은 분명 다른 유년기를 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어떤 생활이 아이들에게 나중에 좋은 영향을 줄지는, 그리고 도움이 될지는 내가 알 수 없으나, 일단 당시에 내가 가진 생각으로는 호주에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가져다 줄 확률이 클 것이라 믿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으리라. 물론, 이 믿음은 지금도 굳건한 편이다.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어울리고, 학교 성적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하여도, 일단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괜찮은 삶'을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따른 '개고생'은 부모의 몫인 것이고. 여기 와서도 사교육에 매달리는 한국인도 많다. 예전에는 그럼 그렇지 하고 자조적인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본인은 먼 호주 땅으로 와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살고 있고, 엄청난 노력(한국에서보다 더한 생존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언어적인 면에서 약점이 없는 아이들은 여기 원래 살던 아이들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부모로서 해볼 건 다 해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선택적인 것이고, 교육열이 전혀 없는 나는, 그냥 그렇게 만족하고 살고 있다.


물론, 내가 정든 고향을 떠나 이 멀리 호주에 살겠다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긴 하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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