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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Aug 19. 2020

어부는 만선을 꿈꾸고 버스기사는 만차를 꿈꾼다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멜번의 겨울은 그 유명한 날씨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비는 수시로 날리고 바람은 갈팡질팡을 반복한다.

그나마 흰색과 회색 사이의 구름들 사이로 햇볕이 비춰주지 않는다면, 온 땅은 그렇게 젖어있기만 할 것이다.

덕분에 잡초든 풀이든 초록색 난 것들은 너무도 잘 자란다.


방역에 실패한 도시는 내가 어릴 적 겪어보았던 통행금지를 저녁 8시부터 실시하고 있고

소수의 필수 직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일도 가지 말라고 제한해버렸다.

무슨 허락된 이유 때문에 밖으로 나간다 하여도 집에서 5킬로미터 밖으로는 벗어날 수 없고,

식료품 쇼핑은 하루에 한 번, 가족당 한 명만 가능하다.

그리고, 마스크 착용을 꼭 해야 한다.

바람이 쓰윽 스치고 지나가는데,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지들 마음대로 나무를 타고 집을 타고 불어 재낀다.

학교 가는 아이들도 필수인력의 아이들 중에 집에 홀로 둘 수 없는 경우이다 보니,

진짜 길에서 사람 보는 일이 드물다.

더군다나 버스가 오가는 꽤 큰길에서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참으로 드물다.


당연히 버스에 오르는 승객은 더 드물다.

동네 슈퍼 가느라 몇 정거장 가는 사람들이나 가끔 오르내리고,

인간문화재 같은 학생들이나 버스를 이용할까

오늘 하루 종일 운행하면서 세명의 승객을 만났다.

그나마 두 명은 5 정거장 미만을 이용했을 뿐이다.


차고지로 복귀하여 마침 만난 동료에게 자랑을 했다.

세명이나 태웠었다고 하자, 자신은 네 명을 태웠다면서 더한 자랑을 한다.

3월 말인가?

그때부터 승객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사들은 내심 그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도로에는 오가는 차들이 줄어들었으니 운전이 편하고,

승객은 현저하게 줄었으니 눈치(?)를 볼일도 훨씬 줄었다.

그러다 학교가 정상 등교로 돌아서자

스쿨버스에 배치받는 기사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확진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자

모든 상황은 급변하였고,

텅 빈 도시를 빈 버스들만 돌아다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사들은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상하게도 빈 버스를 운전하면서 더 지쳐간다.

시간표를 맞추려는 스트레스 하나 때문에 지쳐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우리를 귀찮게 하던 같은 도로를 사용하던 수많은 운전자들이 너무도 그리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를 귀찮게 하던 그 많던 승객들이 너무도 그리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 친한 동료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

관제센터에 무전으로,

버스가 만차라 다음 체크포인트까지는 그냥 승차 없이 하차만 하고 진행하겠다,

라는 말을 또 할 수 있을까?


어부는 만선으로 돈을 많이 벌터이니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버스기사는 만차가 되거나 말거나 항상 같은 돈을 벌게 되니, 만차가 그리운 것은 그냥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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