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요!
아들은 양치를 끝내고 빠른 걸음으로 안방에 들어온다. 안방문을 열자마자 자신의 침대 대신 내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다이빙을 한다. 아들의 몸이 떨어지자 내 몸도 잠시 흔들린다. 이불 위에 앉아 있던 먼지도 허공으로 잠시 떠오른다.
침대 위로 다이빙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를 해도 아들은 매일 같이 침대에 몸을 던진다. 아들 머리 한 구석에 ‘엄마 말 한 귀로 흘려듣기’ 구역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들은 내 옆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엄마, 우리 자기 전에 이야기하자.”
“네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먼저 해봐.”
“엄마가 나한테 질문을 해줘.”
일찍 자기 싫은 아들은 이야기를 핑계로 늦게 자려고 한다. 늘 이런 아들의 요구에 지기 때문에 오늘도 어김없이 비슷한 질문을 했다.
“학교에서 점심 뭐 먹었어? 도서관에서 어떤 책 빌렸어?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속상한 일 있었어?”
아들은 점심으로 떡국을 먹었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제목이 기억 나지 않고, 기분 좋은 일은 없고, 속상한 일도 없었다고 답변했다.
평범한 날을 보냈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전 아이가 속상한 일을 이야기하면, 나는 잠을 설친다. 아이 앞에서 호들갑스럽게 말하지는 않지만 속상했을 아이의 마음을 곱씹다 보면 괜한 불안감이 내 안에 쌓인다.
머리로는 자라면서 겪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데도, 아이가 받았을 상처의 크기와 아이에게 앞으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큰 덩어리가 되어 나를 누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은 것처럼, 남편이나 나의 육아동지들에게 내가 느끼는 바를 이야기한다.
말한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도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마음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이야.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는 또 다른 마음을 품도록 도와준다.
일찍 자기 싫어서 자기 전에 늘 이야기를 하자는 아들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122cm라는 작은 몸도 하루를 겪다 보면 수많은 감정이 쌓일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내다 보면 아들을 누르고 있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이야기하지 않으면 쉽게 잠들지를 못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 놓은 날은 나의 말을 듣기도 전에 잠에 빠져든다. 대신 아들의 속상함을 떠안은 나는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도 아들은 잘 자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