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아이에게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그림책에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쥐들이 등장한다. 유일하게 한 쥐는 먹을 것이 아니라 포근한 햇살, 다채로운 색깔, 이야기를 겨울을 나기 위해서 모은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주인공 프레드릭이 베짱이와 비슷할 거라는 의심을 했다. 이해할 만한 이유 없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프레드릭의 행동이 달갑지 않았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나의 머릿속과 달리 아이는 귀여운 쥐들을 반가워했다. 추운 겨울이 찾아오고 그동안 비축해 두었던 식량이 떨어지자 쥐들에게서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 프레드릭은 자신이 모아 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이야기를 들은 쥐들은 배고픔을 달래며 행복해한다. 그리고 멋진 시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프레드릭을 향해서,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는 말을 해준다.
아이는 시인이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에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질문했다.
"시인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신만의 단어로 표현하는 사람이야. 사람들은 시인이 쓴 글을 읽고, 시인이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설명을 해서 인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시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들과 산책을 하다 보면 아들은 내 오감을 자극하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넌 프레드릭이야."라고 해준다. 프레드릭은 아이와 나 사이에 시인을 대신하는 비밀스러운 말이 되었다.
며칠 전 학교 숙제가 있어서 동시를 짓는 아들에게 '프레드릭 씨'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더니 입가에 작은 미소를 걸었다.
겨울 눈사람 -프레드릭 씨(아홉 살 아들 자작시)
내 손은 나뭇가지
왼손도 오른손도 똑같이 생겼네
내 코는 당근
내 주위로는 눈이 내리고 있어.
소복소복 차곡차곡 눈이 쌓이며
새로운 눈사람이 태어나는 중이야.
쉿! 조용히 해줘.
개구쟁이지만 가끔은 프레드릭으로 변하는 아홉 살 꼬맹이. 아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