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자신이 낳은 알도 다른 새의 둥지에 놓고 도망가는데, 할머니는 자신에게 남은 두 아들과 시어머니를 품었다. 남편의 흔적만 가득한 집과 사람들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오래된 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새집이 들어서고, 그 집에서 떠날 때까지 할머니는 끈적하게 붙어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자신을 붙드는 것들을 놓아버릴 모진 마음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때이다.
“영철아, 너도 형처럼 공부하고 싶으면, 농사 안 지어도 돼. 니 형처럼 논 팔면 되니깐, 너도 형 따라가”
큰아버지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시고, 도시로 나갔다. 떠나라는 할머니의 바람과 달리 아버지도 끈적하게 남았다.
“제가 가긴 어딜 가요. 저 농사 지을 거예요.”
“너 없이도 할 수 있으니 내 생각 말고 가.”
“제가 남고 싶어서 남는 거예요.”
남편이 떠나도 남으셨던 할머니 곁을 그렇게 아버지는 지켰다. 남편이 떠나고 쪼그라진 할머니의 공간을 아버지는 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며느리를 시작으로, 다섯 명의 손주를 안겨주었다.
명수 아저씨는 빈 쟁반을 들고 지나가는 어머니를 불러 세웠다.
“제수씨, 이쪽으로 와요. 마른 사람이 더 말랐어요.”
“마르긴요.”
“아니 누가 보면 친정 어머님 돌아가신 줄 알겠어요.”
“딸 같은 며느리 없다지만 저희 어머님은 딸만큼 절 아꼈어요. 더하면 더했지.....”
아버지 입속으로 들어가던 숟가락은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다. 숟가락에서 작은 떨림이 생기더니 숟가락은 국 속으로 조용히 풍덩 잠겨버렸다. 밤 열 두 시가 되어가는 시각 잔칫집처럼 북적였던 집의 적막함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파고들어, 그 안에서 머뭇거렸다.
따스했던 낮의 온기는 몇 시간째 새로 끓이는 육개장 솥으로 모여들었다. 집안 곳곳에 남아 있던 분주함은 내일의 분주함을 위해서 모습을 감추었다. 할머니와 끈끈하고, 피를 나눈 사람들만 불을 지핀 곳으로 의자를 끌어당겼다.
할머니 방에 할머니는 누워있다. 방불은 켜져 있지만, 그곳에는 우리를 끌어들였던 온기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떠한 의지도 발휘할 수 없는 할머니의 차가움에 밀려난 사람들은 살갗을 데우는 열기로 모여들었다.
슬픔이 한바탕 지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일상이 새겨진다. 할머니의 죽음이 불러든 자리에서 어느덧, 사람들은 일상을 나누기 시작한다. 온종일 혹사당한 몸뚱어리를 끌어안자, 헛헛한 웃음마저 터져 나온다. 할머니는 떠났지만, 우리는 남아 있다. 할머니는 떠났지만, 할머니의 몸속에 여전히 그 벌레들도 남아 있을지 궁금해졌다. 빌어먹을 것들.
할머니는 작은 병원에 갔다가 대학병원으로 갔다. 할머니의 몸에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아버지는 고추에 벌레가 생기면 농약을 뿌린다. 농약을 뿌리고 나면 모든 고추를 먹어치울 듯 움직이던 벌레들은 죽는다. 목숨이 질긴 녀석들은 농약을 피해서 고춧잎이 빼곡한 곳으로 몸을 숨기거나 매콤한 내음이 나는 고추 속으로 몸을 꼭꼭 숨긴다. 할머니 몸 안에도 그런 벌레가 있었다. 고추에서 살던 놈들보다 더 독한 것들이.
여러 차례 검사 끝에 할머니는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할머니를 모시고 갔던 어머니는 그날 차가운 병원 바닥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서 심술을 부리는 아이처럼 어머니는 어머니보다 더 젊은 의사 선생님께 떼를 썼다.
“선생님, 저희 어머님, 수술 좀 빨리해주세요.”
수술 일정이 밀려 있던 터라 담당 의사 선생님은 빨리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울면서 두 손을 비비고 있던 어머니에게 의사는 어쩔 수 없다고 여러 차례 거절했다.
떼쓰는 아이에게 ‘안돼’는 더 큰 울음과 고집스러움을 불러들인다. 어머니는 더 크고, 더 서럽게, 병원 복도에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 정도로 소리를 냈다.
“선생님, 저희 어머님, 저렇게 빨리 못 보내드립니다. 제발 수술 좀 빨리 부탁드릴게요.”
“따님이 이렇게 우셔도 제가 일정이……”
“저희 어머님 저렇게 가실 순 없어요. 며느리로서 이렇게 선생님께 비는 그것밖에 해드릴 게 없어요.”
의사 선생님은 놀랐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하면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 울면서 무릎을 꿇은 적이 처음이었다. 숨넘어가는 때를 쓰면 으레 부모는 포기한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의 개인 일정을 미루시고 수술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그런 시어머니였다. 할머니는 돌아왔지만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독한 벌레를 품고 왔다.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