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4화] 산책
마음에 드는 공원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집 앞 중앙 공원을 걸었다. 하지만 곧 그만뒀는데 그 이유는 도심에 있는 공원이라 작고 걸을 수 있는 부분은 중앙의 트랙뿐이었다. 트랙에는 많은 이들이 뛰고 걷고 하는데 운동의 목적인지라 어느 정도 룰에 맞춰 적당한 속도를 내줘야 했다. 그것을 어길 시에는 대놓고 뭐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 눈치를 보게 된다. 햇빛을 받으며 느릿느릿하는 산책과는 맞지 않다.
지금 내 산책로가 된 곳은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져 있는 호수 공원이다. 이 곳을 알려준 것은 내 친정어머니이다. 우리 부모님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 운동을 하신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신다.
그러다 가끔은 산책으로 대체하시는데 특히 여행 가면 그 산책력이 발현된다.
엄마 아빠는 가족 여행을 가도 꼭 산책은 두 분이 나가시곤 했다. 뭔가 애들은 가라 분위기일 것 같지만 그저 자신만의 시간을 원해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가면 챙겨주어야 할 것들이 생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분이 나가면 함께 있지만 혼자인 시간이 가능하다. 너무나 잘 아는 사이라 침묵도 어색하지 않고 함께 하고 싶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하지만 상대방이 혼자 있고 싶으면 눈치껏 거리를 벌려주어 혼자의 공간을 확보한다. 그런 외로움이 섭섭하지 않을 사이여야만 산책은 공유가 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젠 산책의 고수가 된 두 분의 추천이니 이 공원은 틀림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산책하러 차까지 타고 가냐 집 근처를 그냥 걸으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그것은 산책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물론 집 근처를 간단히 도는 것도 좋은 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산책의 목적은 사색이다. 머리를 비우고 휴식을 위해 천천히 걸어가는 일이라 사람이 많은 곳은 사색하기 조금 어렵다. 사람뿐만 아니다 사람이 만든 무엇인가는 사람의 의도가 담겨 무언의 명령이 된다. 예를 들어 벤치를 보면 ‘여기 앉으세요’라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특히 노루나 백로 같은 동물 조형물이 많은 곳은 더욱 피하게 된다. 우리가 쫓아낸 것들을 일부러 형상화해서 굳이 우리의 잘못을 일깨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북함이 든다. 또한 집에서 너무 멀면 안 된다. 우리의 ‘멀다’ 기준은 차로 20분 이상이다. 그 이상의 시간이면 번거로워 자주 가지 않게 된다. 참으로 꽤 복잡한 기준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공원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그 기준에 가까운 곳을 고른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공원은 집 근처 호수 공원이다. 가운데 호수를 기준으로 레일 바이크가 호수를 감싸고 주변으로는 다양한 습지, 넓은 잔디밭, 작은 숲이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곳에 서식하는 식물들은 다른 공원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고 종류 또한 다양해 걸으며 동행인과 대화하는 재미도 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매점이나 레일바이크는 한 곳에 몰려 있어 그곳을 피해 산책로를 확보하면 한적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주말에는 이곳도 사람으로 붐빈다. 이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안식년이 좋은 이유는 비수기에 편하게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모두 일하는 아침 7시와 저녁 5시는 최고의 시간이다.
오늘은 유난히 더웠다. 폭염 때문에 그냥 내 존재 자체가 더운 날이었다. 그나마 호수가라 도시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그래도 더웠다. 공원에는 방학을 맞아 아빠와 나온 아이들 몇 명 빼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항상 쉴 틈 없이 돌아가던 레일 바이크도 그 날은 지쳐서 멈춰 서 있었다. 그늘로 싹 싹 피해 돌고 힘들면 바로 돌아가기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연꽃 습지를 옆을 걷던 오빠는 무슨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서 있었다.
“이것 봐. 고추잠자리야.”
“어! 진짜네. 이거 진짜 고추잠자리야. 오랜만에 본다.”
연잎에 꼬리가 정말로 고추처럼 빨갛고 광택이 나는 고추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여름 햇살을 머금어 푸를 대로 푸르른 잎과 대조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생각해 보니 고추잠자리 본 지도 정말 오래됐다. 요즘 애들도 곤충 채집을 하나?
“나 어렸을 때 태안에 살았던 적이 있었어. 서울에서 내려간 사투리도 안 쓰는 애라 애들이 좀 텃세를 부렸지. 그래도 살아남아야 해서 애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애들 하는 건 다 따라 했어. 무섭지만 개구리도 손으로 막 잡고 그랬지.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먹으라고 준 꽃이 있었어. 애들이 이거 맛있다고 얼른 먹으라고 해서 먹었는데 집에 오니 입에 두드러기가 다 났지. 엄마는 너무 속상해했고 나도 배신감에 울었어. 근데 신기한 게 다음 날부터 애들이 날 자기들 무리에 끼어주었어.”
“나쁘다. 그러다 큰 일어나면 어쩌려고.”
“걔들은 그게 뭔지 알았던 거야. 먹으면 적당히 탈은 나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일종의 신고식이었지”
“그래서 그 이야기의 교훈은?”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나는 적당히 웃어넘겼지만 그런 오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귀엽기도 했다가 안쓰러웠다. 그 뒤로 우리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곤충채집 숙제에 파리랑 매미만 붙여 갔던 이야기, 혼자 산에 올라갔다가 길 잃어버려서 엉엉 울었던 이야기 등 어린 시절의 서로를 더 알고 싶어 안달이었다. 산책은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게 만든다. 한 참을 걷다 보니 건강한 허기가 오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으로는 뭐가 좋을까?
개구리 반찬 어때.
우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