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Aug 31. 2019

[안식년 5화] 치즈와 스콘


별다방에 앉아 있다 보면 스콘 냄새를 참을 수가 없게 된다. 우리 동네 별다방은 11시쯤 되면 사람들이 하나 둘 차기 시작하는데 점심 먹기 전 살짝 출출 한 시간이라 그런지 간식 먹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그중 스콘은 그 냄새부터가 사람을 입맛 다시게 한다. 그 향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테이블에도 스콘 한 조각, 어떤 날은 두 조각 올라와 있다. 그러다 별다방 카드를 보면 어느새 잔액이 확 떨어져 있고 히스토리를 보면 매일매일 스콘을 먹었으며 어떤 날은 포장까지 해서 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새 스콘 중독이 되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만들어 먹자. 제빵도 배운 남편인지라 만들어 먹자고 졸랐다. 하지만 남편은 제빵에 얼마나 많은 재료와 도구가 필요한지 이야기하면서 왜 사람들이 빵을 사 먹는지 한 참을 설명했다. 하지만 난 지지 않고 유튜브를 뒤졌고 결국 쉬운 레시피를 찾아냈다.

결국 피할 곳을 찾지 못한 남편은 스콘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료는 밀가루(중력분), 버터, 계란, 베이킹 소다. 딱 이것뿐이었다. 요리는 정말 소질 없는 오빠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밀가루와 베이킹 소다 심부름을 나갔다. 마트는 집에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폭염경보의 날씨는 단 5분 만에 사람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밀가루와 베이킹 소다, 저온 살균 우유, 레몬을 들고 집으로 가는 나의 발걸음은 가볍고 행복했다. 스콘에 웬 우유와 레몬이냐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나는 리코타 치즈를 만들기로 했다. 날은 뜨겁고 땀은 등골을 타고 줄줄 흘렀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웠다. 난 이제 스콘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오빠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물을 내주고 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동영상은 몇 번 보았고 만드는 법도 쉬웠기에 나는 바로 시작했다. 오늘 저녁은 맛있는 스콘과 리코타 치즈 샐러드라고, 브런치 메뉴는 꼭 오전에 먹어야 하는 게 아니라고 저녁에도 브런치 느낌으로 먹을 수 있다며 무슨 말인지도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신나게 우유를 끓였다. 제빵 좀 해 본 오빠는 꼼꼼하게 동영상을 보며 차근차근 만들었다.

리코타 치즈 레시피는 간단했다. 우유가 끓으면 레몬 반 개, 소금 약간 넣고 좀 더 끓였다가 면포에 내리면 끝. 더 이상 레시피를 체크할 이유도 없었다. 너무나 간단하고 대부분의 요리 시간은 치즈를 끓이는 것이었으므로 중간중간 오빠의 스콘을 참견할 수도 있었다.

초콜릿도 넣어줘. 치즈 스콘도 먹고 싶어. 나중에 어머님 댁에 가지고 가면 좋겠다. 맨날 반찬 얻어먹어서 좀 그래.
너 치즈 끓는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시간 맞춰놨어. 레시피에서 20분 정도 끓이면 된댔어.

그런데

펑! 펑!
펑! 펑! 펑!

치즈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작은 냄비 속에서 부풀다 못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마치 작은 냄비는 치즈의 활공하고자 하는 꿈을 다 받아내지 못했고 치즈는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비명과 함께 인덕션을 껐다. 덩어리가 엄청난 크기로 진 치즈는 반은 천장에 붙고 나머지 반만 남아 있었다. 날아가지 못한 실패자들만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처참한 부엌의 모습에 나는 풀이 죽고 말았다.

레시피가 이상해.
레시피 안 이상해. 내가 끓고 있는 거 잘 보고 있으라고 했잖아.
몰라. 다 버릴 거야!

잘못한 것은 나인데 괜스레 심통이 났다. 알고 보니, 우유는 저온 살균된 것을 사용했어야 하며 우유 막이 생기면 기포가 나갈 수가 없으므로 우유 막을 걷고 약불로 끓여야 했다. 게다가 더 몽글몽글한 치즈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식초를 왕창 추가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중 최악의 선택은 한 번에 해서 많이 먹겠다는 욕심으로 양을 2배 잡았는데 이에 비해 냄비는 너무 작았던 것이다. 치즈는 정확한 레시피로 해야 하는 화학작용임을 무시하고 평소 내 멋대로 김치찌개 만들듯이 막 때려 넣고 간이 안 맞으면 물 붓거나 소금 넣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대했던 것이 문제였다. 식당 하던 시절 밥 차리기 너무나 힘들어 효율적으로 하겠다고 한 번에 넣어버리고 대충 하는 요리법이 습관이 된 것이다. 엉망이 된 부엌 치우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오빠를 밀어내고 조용히 행주질을 했다.

다시는 만들어 먹지 않을 거야. 이래서 치즈는 비싸고 다들 사 먹는 거야. 바보나 만들어 먹는 거야.

실망은 곧 자책으로 이어졌고 포기로 열매를 맺었다. 행주질을 열심히 하는 사이 스콘은 완성되었다. 오븐을 여는 순간 나는 그 향긋한 냄새. 별다방 11시의 냄새였다.

자 이거 먹고 얼른 기운 차려.
안 먹어. 난 치즈 망쳤으니까 먹을 수 없어.

아무리 투정을 부리고 거부해도 콧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스콘 냄새를 밀쳐낼 수는 없었다. 고소한 스콘 냄새. 나는 앉은자리에서 2개를 끝냈다. 오빠도 2개를 먹으니 스콘은 4개밖에 남지 않았다. 레시피에서 기준 잡은 것근 6cm짜리 원형틀 기준 8개 정도였고 별다방 스콘에 비한다면 2개는 돼야 1개 정도 양이었다.

오빠, 우리 다음에는 2배로 하자. 그래서 마음껏 먹자.
이거 별로 안 어려워. 그때 그때 조금씩 해서 먹으면 돼.
그럼 매일 해줄 거야?
그래 매일 해줄게. 근데 너 매일 먹으면 또 질려서 이제 안 먹는다 할 수도 있어.
그러니 조금씩만 매일 하면 되지.

매일 하든 한 번에 2배 하든 나는 상관없었다. 맛있는 스콘을 별다방 가격의 반의 반도 안 되게 만들 수 있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게 되어 그저 행복했다.

자랑하려고 스콘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니 몇 시간 있다가 엄마는 단호박 생크림 스콘을 만들어 사진 찍어 보냈다. 무엇이든 만들어 먹는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김치는 기본, 고추장, 된장, 간장, 청국장, 등 소스부터 모든 음식을 다 만들어 먹는다. 부지런한 엄마는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서 운동도 매일 하고 음식도 되도록 만들어서 건강하게 먹는다.

탸샤 튜더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녀는 팔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모든 것을 직접 한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그녀의 통나무집은 작다. 그러나 30만 평의 대지를 가진 그녀는 이곳에 숲과 정원을 가꾸며 산다. 그녀는 그야말로 거의 다 만들어 쓰는데 흔히 사용하는 전기 오븐, 믹서, 전자레인지 없이 화로에 닭을 굽고 나무로 만든 즙 짜는 기계로 사과주스를 만들어 바로 마신다. 한 때 귀농이 꿈이었던 엄마에게 타샤 튜더의 이야기를 해주니 그녀가 그렇게 장수하는 이유는 그런 직접 만드는 삶이라서 가능하다고 한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자신이 선택한 좋은 재료로 만들어 먹는 삶이 그녀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오늘의 결론. 스콘은 만들어 먹고 치즈는 사 먹자.
그리고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자.


작가의 이전글 [안식년 4화] 산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