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뭉클해져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기분
살면서 알게 되는건
건강이 참 중요하단거
감기만 걸려봐도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게 되지
우리들 몸과 마음의 건강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성들여 지어먹은 밥, 햇빛에 반짝이는 고양이의 수염, 잘 부풀어 오른 보름달, 몇 년 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이의 소식, 떠나는 새와 함께 지나가는 계절, 사랑하는 사람의 따듯한 손, 도시의 밤, 혹은 지구를 감싼 우주. 모두가 다르겠지만 모두가 비슷하리라. 그렇게 건강의 바탕이 되는 안녕은 늘 곁에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감기만 걸려 봐도 다들 느끼는 그것처럼 말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첫 앨범을 처음 들었던 날, 나는 열심히 맥주를 따르고 있었다. 2007년, 초등학교 동창이자 오랜 벗이었던 친구와 함께 무모하고 즐거운 일을 벌여 '부엉이버스'라는 펍을 시작했고 무사히 첫 겨울을 맞은 참이었다. 그 작은 가게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퇴근 시간이 되면 참새 방앗간처럼 친구들이 모여 들었고 주말이면 전시와 공연, 파티를 기획해서 최선을 다해 놀았다.
명절이면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만나고 뜨거운 여름엔 계곡이나 바다로 떠났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의 옥탑방이나 내가 살던 옥탑방에 모여 바비큐를 하거나 커다란 튜브에 물을 채워놓고 발을 담갔다. 록 페스티벌에 가기도 했고 이태원 클럽, 제주도에 가기도 했다. 함께 하는 친구들은 늘어나기도 했고 줄어들기도 했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언제나 고독했으며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여서 논다는 것은 파동이다. 각자가 가진 고유의 주파수와 진동이 부딪히고 섞여들며 바뀌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한다. 목적을 가지지 않아도 무엇에 이르거나 달성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숱하게 나눈 이야기와 웃음과 눈물과 낮과 밤. 꼬박 4년을 우리는 서로의 건강함을 지켜주는 안녕이었다.
그 4년이 막을 내리던 시기에 ‘감기망상’이 수록된 2집 <우정모텔>이 발매됐다.
그리고 오늘 이 곡을 들으며 느긋한 그루브 위에 묻어 있는 향수를 느낀다. 동굴처럼 텅 빈 공간을 울리는 드럼소리 사이로 깨끗한 물 한 방울이 떨어져 번지는 듯 하더니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기타 리프가 뒤를 잇는다. 능청스럽게 읊조리던 조웅(보컬)의 목소리에서 묘한 울분 혹은 서러움이 느껴진다. 나의 고민에 갇히지 않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스스럼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시간은 어디로 가버렸다. 공간이 사라지자 관계 역시 달라졌고 시간이 많이 흐른 요즘,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으며 만나는 사람들도 줄어 들었다.
데굴 데굴 데굴 굴러가는 시간
보이지도 않는 무거운 시간
사랑을 해본 것 같기도 한데
혼자만 들어있는 시간
한번은 겪어보겠지
길고 길었던 나와의 바이바이
뭐를 잘했건 또 뭐를 잘못했건
그때는 가볍길 바래
지난 10월의 어느 저녁에는 반가운 술자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답하며 여행 얘기를 많이 했다. 다녀온 사람들, 떠날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궁금함을 나눴다. 잔잔하고 기분 좋은 파장이 감도는 밤이었다. 집에 돌아와 동거인과 가볍게 한잔 더했다. 소소한 대화 끝에 그는 침실에 들었고 나는 마감이 닥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글은 잘 써지지 않았고 어느 순간 손에 휴대폰을 들고 이런 저런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문득 지인의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이러저러했다면 저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느낌의 글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트위터에서 ‘이태원’을 검색했다. 여러 가지 사진과 영상이 줄줄이 나오는데 나는 그 때까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여과 없이 그 장면들을 바라보다가 순간 억 하는 탄식과 함께 휴대폰을 꺼야 했다. 그리고 온 몸을 떨면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뭘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눈을 감아도 사람들의 손짓이 계속 떠올랐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어떻게 서울 한복판을 걷던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 10·29 참사는 그렇게 늦은 밤에 이 곳을 덮쳤다.
비통한 마음이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숨이 턱턱 막혔다. 반짝이던 158개의 우주가 이렇게 ‘또’ 무너졌다. 이 끔찍한 인재(人災)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책임지기는커녕 국무총리는 기자들 앞에서 웃으며 농담을 하고 대통령은 좁은 골목을 보며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하며 감탄만 했다. 열 번이 넘는 112신고를 무시한 경찰도, 축제가 아니라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현상'이라며 해마다 인파가 몰리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던 구청도, 주최자 없는 행사라며 국민들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도 책임이 없다 한다.
이쯤 되면 국가의 존재 이유부터 흔들리는 수준의 책임 회피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었던 경험과 자료가 있음에도, 예측할 수 있던 인파임에도 가만히 있던 것 아닌가? 참사 직후 정부는 국민애도기간을 선포해서 참사의 책임과 원인 규명을 외치는 질문을 막았다. 게다가 행정안전부는 발 빠르게 공문을 내려 ‘사고’, ‘사망자’로 표기하라는 권고를 했다. 나와 같은 예술인들은 또 다시 생업을 멈추며 강요된 애도 안에서 숨을 죽여야 했다. 복잡한 심경에 여러 가지로 당혹스럽고 화가 났다. 일각에서는 ‘애도계엄령’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경찰청 정보국이라는 곳에서 <정책참고자료>라는 대외비 문건을 만들어 대통령실에 보고했다. 어떤 여론이, 어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지 계산에 바쁜 그들은 여론동향을 살피며 반정부 시위가 확산될까 주목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죄 없는 사람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스러져간 참사를 바라보며 대응하는 방식이라니. 우리의 국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며칠 전, 끝나지 않은 참사의 여진이 어느 고등학생의 자살로 이어졌다. 동네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을 먹다가 마주한 뉴스에 손이 떨리고 목이 메었다. 이미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자 유가족들,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사태를 온 몸으로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무너졌다. 누군가에겐 회복 불가능한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건강하지 않은 국가와 사회가 우리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셈이다.
커다란 석양을 보고
우주가 참 크다는 걸 안다
가슴이 뭉클해져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기분
참사 희생자들의 평균 연령은 27.1세이다. 나 역시 그 시절에 핼러윈 파티를 하러 이태원에 놀러 갔었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골목마다 가득해서 이동이 불편했고 전철역은 통제됐으며 도로 위의 차들은 꼼짝하지 못했다. 과연 해마다 이태원에 놀러 간 사람들은 우연히, 기적적으로 살아난 걸까?
미국 NBC의 스텔라 김 기자가 한덕수 국무총리 기자회견에서 했던 질문에 가슴을 쳤다.
“애초에 젊은이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까? 이렇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는데,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입니까?”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생명을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숨을 붙여놓는다는 게 아니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걸 의미할게다.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에는 ‘건강이란 질병이나 단지 허약한 상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육체적·정신적 및 사회적인 완전한 안녕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하고 안녕한 상태로 일하고 먹고 이동하고 놀 권리가 있다. 그 곳이 이태원이든, 홍대앞이든, 배 위든, 전철 안이든, 공장이든, 학교든, 길거리든 마찬가지다. 우리, 주파수와 진동을 가지고 모여서 파동을 만들자. 뭐라도 하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Goonam) | Instagram @goonam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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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이름은 '오래된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는 의미이다. 2007년, 1집 <우리는 깨끗하다>를 발매하며 특유의 그루브와 독보적인 사운드로 사람들의 큰 관심과 애정을 받았다. 1집부터 3집까지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했으며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감기망상>은 각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66호(2022년 겨울호)에 전게(前揭)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