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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 Jan 22. 2022

[그럼에도 우리는 ①] 너에게 배운 것

- 음악하는 두 여자와 열아홉 살 고양이 두 마리의 이야기

태어날 때부터


이들에게는 엄마의 품 속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그 사람들의 가족, 친구, 애인, 동료 등을 만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에 다녀갔고 개중에는 같이 살았던 이들도 있었다. 또 이사는 몇 번을 했던가. 노란 햇빛이 마룻바닥 가득히 들어오지만 겨울이면 아침마다 입김이 번지는 집도 있었고 동굴처럼 따뜻하지만 여름 내내 곰팡내 나는 축축한 반지하도 있었다. 나의 동거인은 그런 환경들 때문에 이들에게 항상 미안했다고 한다.


내가 열두 살의 오로, 조로를 처음 만나게 된 집도 이미 밝고 깨끗했지만 우리는 고양이들에게 좀 더 좋은 집을 찾아 이사하려고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했다. 덕분에 지금은 방마다 볕이 드는 창문이 있는 집, 지은 지 오래됐지만 제법 넓어서 이들이 ‘우다다’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오로에 비해 우다다를 뜸하게 하던 조로가 이 집에서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감동했다.


감나무가 보이는 창문과 조로(좌), 오로(우)


너에게 배운 것


듣기로는 이들의 엄마인 시로 역시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과 함께였다고 한다. 쌀집 고양이였던 시로가 동거인에게 와서 가족이 되었고 이내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에 엄마를 닮은 암컷이자 첫 번째로 태어났던 오로, 그리고 그 동네 골목대장이었던 아빠를 닮은 수컷 조로만 이 집에 남았다. 사람의 집에서 삼대째 태어난 고양이들답게 남매는 성격이 온순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었고 특히 조로는 단 한 번도 하악질을 한 적이 없다. 어쩌면 고양이들의 입장에서 나 역시 온순한 인간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성큼성큼 다가가거나 망설임 없이 쓰다듬지 않았고 그들의 이름을 부를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곱고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조심스러움이 묻어나는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건 이전에 나와 함께 17년을 살았던 말티즈 ‘동동이' 때문일 것이다.


동동이는 사람 품 안에 안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반려견이었다. 멀리서 이름을 부르면 반갑게 달려오다가 50cm쯤 거리를 둔 채 멈춰 섰다. 무슨 용건인지 확인하고 가까이 갈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간혹 친구들이 술을 사들고 좁은 집에 놀러 오면 간식 한 조각이라도 받아먹을까 그들의 곁을 맴맴 돌았지만 이내 사람들 목소리가 커지면서 취기가 방 안에 가득 고이면 가장 멀쩡해 보이는 이 곁으로 몸을 피했다. 대부분의 취한 인간들은 영락없이 동동이에게 손을 뻗어 품 안에 꼭 안고 뽀뽀를 퍼붓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동동이의 나이가 15살이 넘었을 때 시력을 잃었고 산책을 할 때면 뒤돌아서서 자신을 안고 걸으라 명령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와 식탐을 부릴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사람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런 모습에 익숙했던 나는 잘 때마다 내 발치에 엎드려 자리를 잡고 함께 잠드는 동동이가 그저 고마웠다. 뿐만 아니라 밖에서 받은 상처를 온몸에 덕지덕지 묻히고 들어온 날, 서러운 마음으로 방 한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 동동이는 언제나 내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내 손을 핥아줬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원칙을 존중했고 그래서 나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그 녀석의 노력에 동참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동동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동동이가 나를 자라게 했던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던 동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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