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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12. 2024

야속한 작업

가마소성

일기예보는 실시간으로 바뀌고 예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당일 아침에 일어나 봐야 알 수 있는 변화무쌍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가마 일정을 잡아서 그런가 보다. 

낮에는 핸드폰 일기예보 앱을 몇 개씩 번갈아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 실시간으로 변하는 예보를 탓하며 이미 정해놓은 일정 속에서 언제 불을 때야 하나 의미 없는 고민을 하고 이어지는 밤에는 온통 쉴 새 없이 가마의 버너에 불을 붙이고 언제 불을 꺼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가마 불을 말도 안 되게 엉망진창으로 때는 거짓말 같은 꿈을 꾼다. 


불을 때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힘들어 매번 시작은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10시간을 꼬박 매달리다 불을 끄는 순간 홀가분함과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불을 때는 긴 시간 동안은 지난 시절의 작업과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이 후루룩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때론 그들과 함께 했던 여러 기억들을 꺼내가며 소성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사고가 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 때면서 벌어지는 당황스러운 많은 일들이 나를 두려움과 불안에 넣기도 하지만 반면 다음 가마를 좀 더 잘해보려는 의지도 만들어주고 경험이라는 자신감의 자양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지난겨울, 연말 이벤트로 학생들과 함께 마켓을 준비하며 가마작업을 크게 하면서 정신이 없었던 나는 실수를 해 그릇을 망친적이 있었다. 내 그릇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대에 찬 학생들의 그릇이 엉망이 돼서 그 충격이 꽤나 오래갔었다. 

그러던 중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하며 답답한 마음에 

"언니 나 매일 밤 불 때는 꿈을 꿔."

라고 하소연을 했더니 

"그래? 난 어젯밤에 유약작업하는 꿈 꿨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삭신이 다 쑤시더라."

라고 하는 통에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곤 얼마 전 거하게 망친 가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언니는 나보다 두 배는 더 큰 가마를 가지고 있고 그 가마를 채우기 위해서는 나보다 두 배는 더 힘이 들었을 텐데 나와 비슷한 이유로 망친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수강생들 작품이 나의 수강생들보다 더 실력이 좋아 기물의 크기도 더 크고 그만큼 다들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던 그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한 번 가마를 망치면 얼마나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자기 작업은 참으로 야속하다. 

상상하고 고민해서 만든 기물을 만들고 건조하고 깎고 장식하고 또 초벌하고 유약작업하고 재벌하는 시간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기나긴 작업기간 동안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꺼냈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하는 것도 힘이 들고 불 한번 잘못 때면 아무리 과정이 중요하다 치더라도 결과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불 때는 날은 맑은 날씨와 적당한 바람과 습도 등 까다롭게 날을 골라서 집중해야 한다.  

나는 이 야속하게 무겁기만 한 흙을 나르고 물레를 차려고 근육운동을 하고 매일 머릿속에선 만들고 싶은 그릇의 모양을 고민하고 보이지 않는 문닫힌 가마 안에서 움직이는 불을 상상한다. 


새해가 시작되고 다시 한 달에 한두 번씩 가마에 불을 붙이면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 나의 대장은 과민반응을 하여 나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고 이젠 중간에 불을 꺼서도 안 되는 이 두려움의 시간을 버텨야 하고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르며 변기의 물을 내린다. 

그리고 길고도 짧은 소성시간이 끝나고 터덜터덜 라온이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서면서 아무리 야속한 작업이라도 이젠 이 일을 하지 않고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양새만 다를 뿐 모두들 이렇게 각자 하고 싶지만 너무 어렵거나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본인만의 야속한 일들을 해 나가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나에게는 이 일이 야속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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