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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리 Dec 25. 2021

퇴사는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딴짓의 씨앗이 있다면?

아마 이전 직장의 사람들은 나의 퇴사 결정을 보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재취업도 힘든데, 이직 자리도 정해놓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퇴사 통보를 한다고? 그것도 자기 자리만 가만히 지키고 있으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을?


“무대뽀로 퇴사할 생각은 없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나도 그렇게 무대뽀로 퇴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기에 계속 머릿속으로 퇴사의 순간을 시뮬레이션 했던 것 같다. 이런 순간이란, 내가 소중하다고 하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 회사를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남아 살이를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국경에 발이 묶여 할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나였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임시 휴직을 하거나, 한국에서 3개월 정도의 재택근무를 하는 방안을 말씀드렸다. 당연히 월급 삭감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사실 타 팀에서도 휴직한 사례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유연하게 대처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수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나도 장모님이 말기인데  보고 있어요. xx씨도 의지를 갖고 남아서 일하세요.”


"...???"




정확한 워딩은 조금 달랐지만, 결국 의미는 하나였다. 본인은 가족과 별개로 자신의 커리어를 더 중시하니, 나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에 따른 강제적인 사항이 아닌 이상, 재택근무는 근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트렌드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러했다.)


물론 회사에 일개 직원 따위의 개인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를 바라는 건 무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회사 생활 내내 직접 보고를 드리며 나름 모셨던 분이기에, 아주 일말의 희망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재택근무를 해도 되는 직종인지라, 월급 삭감까지 감안한 이상 어느 정도는 진행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예의를 갖추어 상담을 요청해도 상대방은 전혀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본인의 기준을 나에게 강요했을 때 비로소 나는 제대로 등을 돌리게 되었다.


지금 와서 표현하기엔 다소 속이 거북하지만, 조금이라도 상대방에 대해 기대를 했다는 건.... 어쩌면 나도 어느 정도는 회사에 대한 나의 짝사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더 이상 이 수장이 있는 회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수장은 나의 직속 상사이자 임원이었으며, 내가 나간 뒤로 부사장으로 승진을 했다. 이제는 제3자로서, 그냥 그도 그의 자리에서 잘 살고, 나는 나대로 잘 살기를 바란다. 누군가 몰락하기를 염원하는 데에 빼는 에너지 소모도 상당하지만, 굳이 생각을 깊게 할 정도로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위와 같이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설명은 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닌데 회사의 문제로 인해 퇴사를 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내 결정이고 내 책임이었다. 내가 가족보다 이전 직장에서의 내 커리어를 더 중시했다면? 나는 충분히 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가족보다는 본인의 커리어를 위해, 혹은 생계적 사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많은 가치를 뒤로하고 혼자 이곳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과 내가 중시하는 것이 달랐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저 다를 뿐.


그렇기에 퇴사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고, 월급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막중하게 다가올 삶의 무게도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돈을 벌러 나갈 때,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더라도 (브런치 비하 발언 아님) 자격지심을 느끼지 말아야만 했다. 퇴사 퇴사, 노래를 부르고 다니지만 실제로 퇴사는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 밥을 뺏어가게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분명하게도, 퇴사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나는 젊어서 쓰고 죽자는 생각을 가진 ‘욜로족(You Only Live Once)’도 아니었다. 현금 흐름이 없는 삶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 삶)은 현재로서 상상해 본 적도 없거니와, 내 자산을 불려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주식이나 코인 단타로 대박을 쳐서 그 자산만 믿고 퇴사한 것도 아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지 못했기에, 여전히 현금 흐름이 필요했다. 돈 벌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직 자리를 알아보지 않은 채 퇴사를 하게 되었으니,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퇴사는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나, 뭐해 먹고살지?


그때, 나를 채워준 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이리저리 뿌려둔 “딴짓”의 씨앗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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