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 위의 번쩍번쩍한 쇼핑몰에서 느낀 불편함
리빙스턴: 뜬금없는 벌판 위의 블링블링 힙플레이스
잠베지 강에서 상수도 만들 돈을 착복해 제대로 된 상수도 시스템이 없다는 이야기만큼 기억에 남은 건 리빙스턴의 한 쇼핑몰에서 본 광경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한 쇼핑몰에 갔다. 차를 타고 한참 가다 보니 허허벌판 한 복판에서 마치 신기루처럼 갑자기 쇼핑몰 하나가 나타났다.
뜬금없는 광경에 어리둥절하며 차에서 내리자, 어디선가 쿵짝쿵짝하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해서 다가가 보니 쇼핑몰 한가운데에 커다란 스크린을 가진 화려한 야외 바가 있었다.
바에는 명품 옷과 보석을 걸친 사람들이 비싼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옆에는 벤츠, 포르셰 등 번쩍번쩍한 고급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블링블링(Bling Bling, 번쩍번쩍)’이라는 추상적인 영어 단어의 의미가 이렇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 바의 화면에서 흘러나오던 화려한 뮤직 비디오보다 훨씬 더 눈부시고 화려한 장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야- 이런 곳이 있네'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전 세계의 흔한(?) 부촌의 풍경이었는데, 바로 몇 시간 전까지 허허벌판인 시골에 있다 와서 그런지 갑자기 너무 다른 번쩍번쩍한 세상을 보니 충격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밥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동안 옆 친구에게
“있잖아, 아까 시골에서는 이 평범한 티셔츠랑 청바지를 입은 것도 좀 미안하게 느껴졌는데, 몇 시간 뒤에 저 바 앞에 잘 차려입은 사람들 앞을 지나갈 때는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 사는 사람들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어. 이 갭은 뭔가 싶어서."
라고 했더니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굴에 웃음은 띄고 있었지만, 약간 씁쓸해 보였다.
다시 루사카: 총을 든 경비를 보며 한 생각들
그리고 리빙스턴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다시 루사카에 와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밖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숙소에서는 저녁이니 절대 나가지 말만 했다. 호텔 앞에는 총을 든 경비가 있고, 호텔 담장은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이후 내가 느낀 불편함이 뭔지 알게 되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었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당장 사람이 죽어갈 만큼 절망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나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는 절망적으로 보였다.
리빙스턴의 클럽에서 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자세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이 나라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처음 루사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만난 짐꾼들은 당시에는 불쾌했지만, 이런 모든 광경을 보고 나니 그들이 왜 그렇게 날카로웠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절박해 보였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이런 환경이라면 나라도 험해지는걸 넘어 도둑이 될 수 있겠다고.
나는 목이 너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데, 그 물을 사 마실 돈을 구할 수 없는데 옆에서는 자신의 집에만 수도를 설치하고는 신나게 수영을 하는 걸 본다면 비참함을 넘어 분노가 올라오지 않을까?
먹고 사는 데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강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텐데, 돈을 착복해 총을 사고 경비를 고용할 돈을 사람한테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면 밤에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경험은 우물 모금 이후 끝날줄 알았던,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켰고, 나는 이 문제와 나의 먹고사는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끝에 내가 생각한 방법은 '교육'이었다. 사람들이 공부를 해서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그리고 옳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힘을 키우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교육.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나 더 벌여보게 되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수학책을 만드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