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 해인은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한 고등학교 동창으로부터 온 전화를 끊으며 한 시간 전부터 받은 전화의 횟수를 세었다. 곧이어 열세 번째 상대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오는 전화를 전부 받았다가는 이대로 방송국 주차장에서 밤을 새워도 모자를 거란 생각에 해인은 수신거부를 누른 후 벨소리를 무음으로 변경했다.
「우리에게는 야수로 더 잘 알려진 용악산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현명우가 오늘 오전 수감 중인 교도소에서 자해 소동을 벌여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 되었습니다.」
카메라 옆 프롬프터에 적힌 멘트를 읽으면서도 해인은 이 소식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거라는 걸 예상했다. 종편 TCN의 시사 프로그램 <이슈저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 가장 자극적인 사건들만 모아 보도하는 이 프로에서 15년 전 검거된 사형수의 자해 소동은 다른 사건들에 비하면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이 한 때는 용악산 일대를 누비며 스물두 명 혹은 스물네 명을 살해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지만 지금은 쇠창살에 갇혀 자유를 잃은 수감자일 뿐이었다. 자해를 하든 목숨을 잃든 상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야수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장 자동차 라디오의 채널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타 방송국의 뉴스를 틀어봐도 야수의 소식을 따로 전하는 곳은 없다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런데도 해인에게 쉴 틈 없이 전화가 걸려오는 이유는 야수의 소식을 전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해인이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으로 야수에게 희생을 당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스물네 명이었다. 그중 두 명의 실종자이기에 공식적 사망자는 스물두 명이다. 하지만 실종자 두 명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함 명도 없었다. 실종자 중 한 명인 강우의 딸 해인마저도.
야수 현명우가 검거된 후 해인은 매일 같이 구치소에 접견을 요청했지만 동의를 받은 건 단 한 번 뿐이었다. 선고기일 하루 전. 매번 접견을 거부하던 현명우가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인 건지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해인은 이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믿었다. 어차피 사형은 확정이나 다름없었고, 이런 사실이 야수의 마음에 변덕이 일게 만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에 갇힌 야수를 마주한 해인은 현명우가 야수가 아닌 텅 빈 야수의 껍데기만 두른 박제된 짐승과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형당할 거래요.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을 총으로 쏴 죽였는데 사형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요. 제 말은 아저씨가 스물네 명을 죽였든 백 명을 죽였든 어차피 사형이란 거예요. 우리 아빠가 살아있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거 안 해요. 살아있다면 지금까지 저한테 연락 한 번 안 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이제는 더 원망할 거리도 없으니까 시신이라도 찾게 해 달라고요. 얼마나 끔찍한 몰골을 보게 될지 이미 각오하고 있으니까 제발 아빠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협박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울며 불며 애원해 봐도 야수의 입에선 강우의 행방을 짐작할만한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껍데기만 남은 야수는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해인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접견 시간이 끝날 때까지 끝내 현명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있을 선고를 앞두고 양심고백이라도 할 결심이 선 걸지도 모른다는 해인의 바람은 처참히 무너졌다. 더는 자유롭게 사냥을 할 수 없으니 고통받는 사냥감의 모습을 이렇게라도 보고 싶어 해인의 접견을 허용했을 거라는 의심이 차라리 더 가능성이 있게 느껴졌다. 야수에게 아빠를 빼앗기고 처절하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치를 떨면서도 해인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야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냥감을 오래도록 괴롭히는 법을 알고 있었다.
"강우 말이다. 아직 거기 있지 않겠냐. 그 산 말이다. 용악산. 아마 못 내려왔을 거다."
접견실을 떠나기 전 현명우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불쾌 한 기억에 잠식당해 관성적으로 액셀을 밟던 해인은 '인평시'라 적힌 안내판 발견하고서야 오른발에 힘을 빼고 속도를 줄였다. 잠시 후 시내에 접어들자 경기도 외곽의 특색 없는 작은 마을을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만든 용악산이 이곳이 인평시임을 알리려는 듯 검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대학을 핑계로 도망치듯 인평시를 벗어난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유일한 친척인 고모 강희가 인평시에 여전히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년 명절이면 찾아오고는 했지만, 그마저도 안부를 묻고 적당히 식사를 한 후 쫓기듯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게 전부였다. 강희는 내심 서운해하는 눈치였지만 인평시를 끔찍해하는 해인의 심정을 안다는 듯 별다른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오빠를 잃은 강희는 그래도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고향을 지킬 여력이 있었지만,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아빠를 잃은 해인에게는 고향에 남아있을 어떤 의지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던 거였다. 그러니 때가 되면 가끔 찾아오는 조카를 반길 뿐 딱히 오라 가라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해 온 강희는 인평시로 내려오라는 본론만 간단히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명절도 아니고 강희에게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해인은 군말 없이 인평시로 향했다. 강희가 방송을 봤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단 둘이었던 집주인들이 떠나고 버려지다시피 한 집은 여전히 단정했고 아직도 익숙했다. 강희가 강우의 흔적이 가득한 이 집을 여전히 쓸고 닦고 보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해인은 알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는 거실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그런 감상에 젖어있던 해인에게 강희가 종이 한 장을 쓱 내밀었다. 민망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한다는 듯 해인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강희가 내민 종이는 칸을 채우지 않은 빈 사망신고서였다.
"15년이면 할 만큼 했어. 만약에…… 만에 하나 네 아빠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이 정도 기다린 거 알면 서운해하지도 못할 거다."
뭐가 그리 민망한 지 여전희 강희는 해인의 눈을 피한 채 퉁명스레 말했다.
기다림. 한 5년 정도는 기다림 때문에 강우의 사망 신고를 망설인 게 맞다. 하지만 그 이후는 오기였다. 강우의 동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오기. 유강우 형사의 딸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들 동료의 딸이 아직도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당신들도 포기하지 마. 뭐, 이런 오기.
아무 대꾸가 없는 해인이 답답하다는 듯 강희가 재촉을 해댔다.
"진작 가져와 놓고 너한테 선뜻 쓰라는 말이 안 나와서 추석에나 말해봐야지 했는데 아까 방송 보니까 더는 안 되겠더라. 해인아, 이제 그만 신고해."
15년 동안 침묵하던 현명우는 3주 전 갑자기 자신이 무죄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당연히 경찰도, 언론도, 인터넷 커뮤니티조차도 현명우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곳은 없었다. 자신의 외침이 묵살당하자 현명우가 선택한 다음 방법은 자해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실종자의 딸이자 기자인 해인 말고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사실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명우는 지속적으로 해인에게 접촉을 시도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해인에게 고통을 주고자 한 현명우의 목적이 달성된 걸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도 15년 만이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현명우가 움직였고, 처음으로 해인에게 접근해 왔다. 어쩌면 이번에는 강우의 행방에 대해 입을 열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감이 생겼다. 그런데 강희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15년 기다렸으니 더 기다려 보자고? 그렇다고 사망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강우가 사망하지 않은 게 되는 건가? 결국 해인이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끄덕이며 강희가 들을 자격이 있는 말을 순순히 꺼내는 것뿐이었다.
"내가 먼저 알아서 했어야 했는데 고모가 이런 말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늘 도망치듯 집을 떠났던 해인처럼 강희가 도망치듯 떠나버린 집의 공기는 사람이 한 명 줄었는데도 더 묵직해진 느낌이었다. 벌써 한 여름인 듯 후덥지근한 날씨임에도 이 묵직한 공기를 빼내기 위해 해인은 에어컨을 끄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거실의 베란다 창과 강우가 쓰던 안방, 해인의 방, 마지막으로 강우의 서재까지.
인평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용악산이 서재 창을 통해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강우 말이다. 아직 거기 있지 않겠냐. 그 산 말이다. 용악산. 아마 못 내려왔을 거다.'
현명우의 그 말에 조금이라도 진실이 담겨있었을까? 그날 이후 오랜 시간 고민을 해왔지만 해인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야수를 쫓던 자신의 동료가 실종된 것을 알게 된 경찰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야수가 활동했던 용악산 일대를 샅샅이 뒤지는 거였으니까. 강우가 아직까지 용악산을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대대적인 경찰인력으로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다른 누가 찾는다 해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게 확실했다.
해인의 머릿속에는 또다시 어둡고 축축한 산을 헤매는 강우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런 상상이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주받았다는 저 산만 보면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국 해인은 서재의 환기는 포기하고 창문을 거칠게 닫아버렸다. 바람소리마저 차단되자 서재는 진공상태의 철저한 무음의 공간이 된 것만 같았다.
가끔 집을 방문하면서도 서재는 찾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 서재에서의 마지막 기억 때문인지도 몰랐다.
제보자의 전화를 받고 용악산으로 향했던 강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여러 번 증언을 했던 일 때문에 해인은 강우가 집을 나선 시간을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해인과 저녁을 먹고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 후 해인은 혼자 집에서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들었고, 한 통의 부재중 전화만을 남긴 채 강우는 사라졌다. 강우를 불러냈던 제보자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보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날 그 전화를 받았어야 했는데. 잠을 자느라 강우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해인은 오랫동안 자기혐오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강희도, 강우의 동료인 순규와 민하도 모두가 해인의 탓이 아니라 위로했지만 해인의 죄책감을 더는 데는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 후 틈날 때마다 강박적으로 핸드폰의 부재중 내역을 들여다보던 해인은 현명우가 사형선고를 받던 날 핸드폰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강우의 마지막 흔적이 남은 핸드폰을 버릴 수는 없었고, 최선의 방법은 이 서재 서랍에 넣어둔 채 잊고 살아가는 거였다. 잊고자 노력하는 거였다. 핸드폰을 서랍에 넣은 후 서재도 다시는 찾지 않았다. 이곳을 찾으면 다시 핸드폰을 열고 강우의 흔적을 좇게 될까 봐. 그런데 이렇게 서재에 발을 들였으니 핸드폰을 꺼내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건 당연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던 나무 책상의 서랍이 나무끼리 긁히는 마찰음을 내며 여렸다. 서랍 안에는 이제는 보기 힘든 배터리 교체형의 구식 핸드폰이 처음 넣어둔 모습 그대로 놓여있었다. 충전기와 여분의 배터리까지 급히 욱여넣은 모양새였다. 해인은 책상 옆 벽 콘센트에 충전기 어댑터를 꽂고 핸드폰에 연결한 후 전원을 켰다. 오랫동안 방치해 둬서인지 세 번의 시도만에 전원이 들어왔다. 통화목록 버튼을 누르자 제일 위에 강우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통화 내역이 떴다. 그날 이후 걸려오는 전화의 기록은 매번 지우고 강우의 부재중 기록만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화면이었다. 전화가 걸려온 시간을 보니 2010년 7월 6일 11시 49분이었다. 무심코 시계를 보니 11시 48분.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이었다. 바보 같은 행동이라 생각하면서도 해인은 통화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용할 수 없는 네트워크입니다.」
대체 무엇을 기대했길래 긴장을 했던 걸까. 화면에 뜬 경고 메시지에 긴장했던 해인의 두 어깨에 맥이 빠지며 웃음이 나왔다. 서랍을 닫으면 또다시 1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이 핸드폰의 존재는 잊힐 것이다. 아니, 잊으려 노력하며 외면하고 살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허탈한 감정을 추스르며 해인은 콘센트에 꽂힌 충전 어댑터를 뽑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등뒤에서 들려오는 진동소리. 해인의 핸드폰은 거실에 둔 가방 안에 있었다. 아니, 이 안에 가지고 왔다 해도 방송국 주차장에서 출발하기 전에 무음으로 해두었기 때문에 진동이 울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진동 소리는 책상 위에서 울리고 있지 않은가. 사용하지 않은지 12년이 된 개통도 되지 않은 핸드폰이 울리고 있는 거였다.
콘센트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고 해인이 책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11시 49분. 해인의 구식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아빠♥', 강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