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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an 12. 2022

잠시 멈춤, 그리고 한동안 멈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

20대에서 40대 초반을 거치면서의 나는,

성취주의자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낳고 키우고를 네 번 반복했고, 평사원에서 대리로, 과장으로, 팀장으로. 실장으로 네 번의 승진을 했다.


발령나는 부서마다 업무의 특성에 맞는 자격증을 취득했고, 독서지도사 수험서적을 잔뜩 들고 조리원에 들어가기도 했던  나는, 어쩌면 삶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성취'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쉬는 방법도 요란했다. 악기를 연주하고,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캔들을 만들고, 뜨개질도 해보고, 요리도 배웠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 공원, 놀이동산, 극장, 원데이 클래스, 공연...


그리고 남편과는 치열하게 싸웠다.


얼핏 보면 흡사 미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 시간이었다.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아이의 의식주를 전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전투적인 육아 1부가 16년 만에 종결되었다. 지지고 볶았던 남편과의 전투도 휴전상태에 돌입했다.  여전히 나는 저녁 밥상을 총 3번 차리는 일상 가운데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가롭고 평화로우며 지루하고 재미없기 그지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글쓰기도 멈추고, 책 읽기도 멈추고 아무런 성취목표 없이 모든 것이 스톱된 지금 이 순간.


예전의 나였으면 가장 불안하고, 안절부절 했을  시간이었겠지만

거센 폭풍우를 한번 뚫고 잔잔한 파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십대 삼십대때의 불타던 열정이 사그라들어 그럴수도 있겠으나 성취의 뒷면에 자리 잡고 있던 나의 불안과 작은 자아가 안정되고 단단해졌나보다 생각한다.

아무것도 이뤄내고 있지않는 내 모습을  가만히 놔두고 견뎌낼 수 있겠다.


멈춤. 한참 멈춤. 계속 멈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도 이렇게 평온할 수가 있구나.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수고하네 잘하네, 대단하네.. 그런데 난 잠시 여기 이 자리에  있을게'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느긋함.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새로 생긴 '평온' 이라는 마음에 감사하며 가만히 2022년을 시작해본다.



#나의 관심사는 온통 캠핑^^이리저리 불타오르는 장작불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싶고, 이른 아침 바깥공기 마시며 커피 한잔 마시며 니나노~하는 캠핑

멈춤을 너무 오래했더니 글도 잘 못쓰겠다. 삶의 소소한 일상이 기록없이 흘러가는 것은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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