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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Apr 14. 2021

일단 세 단어

살아있는 글쓰기의 시작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충분히 가다듬고 나서야 비로소 실행에 옮기는 버릇이 있었다. 글도 그렇게 썼었고, 아주 못 쓴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논문을 던지고 사회로 나왔다.


브런치 서랍에 제목과 대략적인 목차만 잡혀있는 글이 퇴근 길마다 하나씩 쌓여서, 어느새 발행한 글보다 제목만 저장해 놓은 글의 수가 두 배를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글을 맛깔나게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완전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일을 계속 미뤘다. 그런데 사회인이 되고 나니, 생각할 것이 너무 많고 업무가 끊임없이 밀려와서 브런치 글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다듬는 데 집중할 겨를이 없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문장 써 내려가려고 노트북을 열었더니 머리가 더 복잡하다. 그때 무슨 일이 있긴 했는데, 거기에서 그칠 뿐, 생생한 감상을 쓰기에는 역부족이다. 뒤늦게, 지도교수님께서 그토록 답답해하시며 '일단 써야 글이 나오고 고칠 것이라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반복해서 강조하시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그때는 아직 어려서 그랬던 걸까. 소위 말해 똥고집을 부리며 머릿속에서 생각을 반복해서 검토하고 메모만 남기다가 한숨에 글을 후루룩 써 갔었다. 그때는 조금씩 써서 고치는 것보다 생각을 많이 다듬은 뒤 형식이 잡힌 글을 쓰는 일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다듬는 데에는 글을 쓴 뒤에 퇴고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수많은 해야 할 일들로 뒤덮인 머릿속에선 글로 쓰려고 했던 감상들이 빠르게 지워졌다. 완벽한 글, 생생한 감동이 전해지는 글을 쓰고 싶었던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감동이 살아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글을 완성하고 싶다면 일단 세 단어부터 쓰고 봐야 하는 것 같다. 첫 술에 배부르냐는데, 간에 기별이라도 보내려면 일단 한 모금이라도 마셔야 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오늘은 침대 맡에 앉아, 언젠가 작가가 되어 진솔하고 웃긴 일상 시트콤을 써서 귀여운 월급으로 입에 풀칠하며 사는 삶도 먹을 것 앞에서 가격 따지지 않아도 되는 삶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사람들에게 소소한 웃음과 감동 안겨주겠다던 꿈을 다시금 떠올리며 세 단어로 시작한 끄적임을 한번 세 문단의 글로 마무리 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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