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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Jul 01. 2021

월급타는 일에 사사로운 생각 끼워넣기 힘든 이들을 위한

소설 <서른의 반격>

0. 들어가며: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사회초년생인 주인공 김지혜가 자신이 원하는 업계에 발가락만 겨우 담근 채 정규직을 준비하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다. 사실 한국 나이로 앞자리에 3을 달게 되면서 삶의 방향성을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다른 서른들은 어떻게 사는 걸까, 아마도 서른에 경제활동인구가 된 나보다 대부분 일찍 사회에 진출해서 자리를 잡았을 테니 같은 서른의 이야기를 보면 조급함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래도 동년배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극도 받고 위로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매일 밤 머릿속을 맴돈다. 이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동년배의 속 이야기였고, <서른의 반격>은 나이에 집착하는 그리고 SNS를 통해 알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서른이 된 남들의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낱낱이 알아가고 싶은 나 같은 한국인을 저격한 제목이었다. <아몬드>의 저자가 쓴 책이라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후루룩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작품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는 소설이었다.


1. 인상 깊었던 내

원하는 업계의 정규직으로 가고 싶은 계약직 사회초년생의 마음을 이처럼 잘 묘사한 글은 없을 것 같다. 정진 씨를 불러오는 것이나, 월급 받는 일 가운데 사사로운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표현은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특히, 나는 요즘 행복한 순간을 딱히 정의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 중인데, "숨이 턱에 닿도록 뛰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어딘지도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모두의 틈에 섞여 바쁘게 발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특별히 슬프지 않다는 것이, 가끔은 담담히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라는 문장이 크게 공감되었다. 나는 요즘 어떤 순간에 행복이나 불행의 라벨을 붙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행복을 떠올리려 하다 보면 하는 수없이 불행이 따라 생각나기 마련이라, 그냥 모든 것을 담담히 흘려보내고 싶어서다. 행복에 겨워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다 보니 위의 문장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또한, 지혜 '정민 씨'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서 불편한 점심 식사 자리나 회식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 활용하는 점도 인상 깊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 점심시간마다 소개팅, 결혼, 학생에 대한 서운함 등을 듣고 나면 기력이 쭉 빠진다. 이에 일을 좀 더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 정민 씨처럼 '식이 요법'을 핑계 삼아 홀로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만의 정민 씨가 곧 식이 요법인 셈인데,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가도 대화 성향이나 삶의 가치관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잔뜩 신경 써서 이야기할 때면 음식 맛도 느끼지 못하고 속만 더부룩했었기 때문에 오래도록 식이 요법을 지속할 생각이다.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또래가 또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한편으로 너무 튀고 싶지 않은 맘에 위안이 되었다. 어떤 사람에겐 집이 아닌 곳에서도 사회생활을 잠시 내려두는,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서 '정민 씨'나 '식이 요법'을 소환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2. 아쉬웠던 점

지혜가 옥과 연애로 얽히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신파적인 전개였다. 규옥이 지혜만큼의 분량은 아니더라도 어쩌다가 박 교수라 불리는 범죄자의 글을 써 주게 되었는지를 좀 더 다뤄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첫 번째 반격은 규옥이 박 교수에게 언제 성범죄를 인정하고 반성할 것인지, 짜깁기한 남의 글로 강의하면서 돈 벌기를 그만둘 것인지 여러 사람이 보는 카페에서 큰 소리로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옥이 센치한 철학과 출신으로 지혜에게 구애와 맨스플레인을 넘나드는 말을 뱉는 것을 보고 규옥이 아니라 곤혹, 주옥, 꼰(대규)옥 정도의 이름으로 개명해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정진 씨를 만들어내 고독을 즐기고 있는 지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면 정진 씨와 함께 있는 지혜의 시간에 끼어들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진정 고독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를 그릴 거였다면 지혜도 정진 씨와 있는 시간을 방해한 규옥을 단호하게 내치거나 귀찮게 여겼어야 하지 않을까? 규옥의 존재는 지혜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향에 맞춰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한 사람이 아닌,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을 회피한 인간에 더 가깝게 보이게 만들었다. 지혜가 공윤으로 활동하고 있는 왕따 가해자의 책 사인회에 가서 시원하게 할 말 다 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데, 이때 규옥이 따라와서 지혜를 위로해준다. 지혜가 홀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는 왜 왕따도 늘 친구가 있고 어려운 순간에 함께하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현실이라면 지혜가 혼자서 과거부터 이어져 온 맘 속 응어리를 다 풀어내지 못하고, 왕따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못한 데 대해 원통해했을 확률이 더 높다. 강인한 사람이라면 그러다가 스스로 상담사를 찾아가는 등의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 아무리 극이라도 늘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서 주인공이 일어서길 도와주는 부분이 못내 아쉽다. 지혜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책임을 지되, 연애로 얽히지 않을 인연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더라면 현실성이 더 높아졌을 것 같다.  


3. 으며: 세 줄 요약

깊게 공감할 수 있는, 트렌드를 따르는 신파.

신파라서 재밌지만 신파라서 조금 불편하기도 하다. 주인공과 이성애로 얽히는 서사가 빠진 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 시대 사회초년생들의 성장 소설이라고 적었을 것 같다. 그러나 맨스플레인에서 오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감 가는 문장과 상황 묘사가 많았다. 일에 치여서 사사로운 생각을 할 생각조차 힘든 이들이 후루룩 읽고 '맞아! 딱 내 상태랑 같네!'라고 맞장구 칠 수 있는 이야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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