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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n 21. 2021

소설책을 읽는 이유

<가재가 노래하는 곳>


 결혼 전까지만 해도 소설만 읽었다. 덕분에 친정집 책장에는 지금도 소설책만 수백 권이 꽂혀있다. 당시에는 좋은 책에 대한 기준도 없이 무엇이든 읽는 게 좋았다. 고르고 보니 장르가 소설이었을 뿐, 길든 짧든 번역된 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재밌다는 책은 마구 읽었다.



 그저 그런 소설은 두 번 읽기 힘들다. 이미 스토리를 다 알고 읽으면 스포일러 당한 반전 영화를 보는 듯 김이 빠진다. 이 책도 반전 스토리가 있어 재미만을 생각했을 때 다시 읽는 재미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세 번을 읽어도 재밌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존재하는 요소를 대부분 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됐다.


 우리는 소설을 왜 읽을까? 이야기가 좋아서? 다양한 사람들 모습이 매력적이라서? 상상하는 즐거움 때문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사람들이 소설에 빠지는 요소를 많이 가진 책이다.


 소설 속에는 많은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뿐 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 우리는 그려진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고 너를 찾는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위안을 받는다.

 <글쓰기, 이 좋은 공부>에서는 '어른의 글쓰기는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 말한다.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가 소설이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을 통해 현실을 재조명하는 과정을 거친다. 좋은 소설을 한 편 읽는 것은 웬만한 심리치료만큼 효과가 있다. 나도 모르게 아팠던 마음이 책을 읽는 동안 치유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설을 읽는 건 감정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주인공에 몰입하는 동안 괴로운 현실을 잊을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빠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잠깐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함께 가슴을 졸이고 설레면서 모르는 사이에 현실의 감정은 안정을 찾는다. 책은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더 많이 몰입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쉬어가기에는 더 적합해 보인다.


 뭐니 뭐니 해도 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스토리와 허구성이다.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와 반전 요소들은 재미있는 소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다. 소설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밤을 지새우고 끝까지 책을 읽은 경험을 한 번쯤 가지고 있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마음은 소설책을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다. 현실적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자유가 있다. 주인공이 외계인이라도 상관없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사람들은 해방감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소설에는 엄청난 묘사가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소설 속 묘사가 분량 늘리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시선이 닿는 벽과 커튼과 의자와 식탁을 왜 그렇게 꼼꼼하게 그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묘사를 통해 스토리를 완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소설 속 배경은 묘사를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는 진부한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린 셈이다. 덧붙여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습지를 포함한 그 모든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여기에 작가만의 색채가 보이는 보석 같은 문장들이 덧칠하듯 쓰여있어 읽는 즐거움이 다채롭다.


‘카야는 오빠의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아 하루의 끝이 벽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시카모어와 히코리 나무가 탁한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를 드리우고 무자비한 바람은 황량한 풍광에 햇빛이 퍼뜨린 기쁨을 하나도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물이 마를 리 없는 바닷가 땅에 아무 쓸모도 없는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조디는 카야의 부엌에 대롱대롱 매달린 외로운 삶을 보았다. 채소 바구니 속 소량의 양파들, 접시꽂이에서 마르고 있는 접시 하나, 늙은 미망인처럼 행주로 곱게 싸둔 콘브레드에 고독이 걸려 있었다.’


 한동안 읽을 일이 없었던 소설을 다시 접할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소설만 읽어대던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의 가치를 몰랐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그토록 오랫동안 이어진 이유는 분명히 있다. 아직까지 소설을 읽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는 분은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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