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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넬 Jun 17. 2022

스무살이 자신을 고깃덩어리라고 말했다.

환포(幻泡)의소녀 - 소마(SOMA)

                                             

환포(幻泡) 소녀, 소마(SOMA), 2022


 스타일의 변화는 기존 팬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단순히 가창 스타일의 변화부터, 앨범을 이끌어가는 방식의 변화까지. 아티스트가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는 청자들에게 빠르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대부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마 역시 이번 EP[환포(幻泡)의 소녀]에서도 이런 급변한 스타일이 우리에게 새로운 감흥을 주기도 하며, 낯설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주는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볼 이유가 있다. 소마의 전작은 LP[SEIREN]으로 지금으로부터 3년 2개월이 되었다. 물론 개인활동 이외에 hnie nhig으로서 활동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 디스코그래피에서 소마가 추구하던 방식은 자신의 과거에서 발굴해낸 기억을 이야기로 만들었었다. 동심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호기심의 서사에서 소마는 알맞게 자신의 과거를 풀어내었다. 이번 EP[환포의 소녀] 역시 과거에서 꺼내온 이야기임을 앨범 소개(나의 스무살.)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식이 다르다.


R&B의 음악을 지향하던 소마는 이번 앨범에서 일렉트로니카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덥스텝의 장르를 사용하여 더 이상 가사로부터 시작되는 서사를 전면적으로 대항한다. 1번 트랙 [Welcome]에서는 전작과는 다르게 음산한 사운드를 구사하며 전자음의 인사말이 나온다. 'Welcome to Pinkbox' 'hello' 등의 문장이 불규칙적으로 남발되며, 곡의 중반부를 지났을 때 사운드의 변화와 함께 몰입도를 상승시킨다. 이 곡은 인트로(intro)의 의미에 충실한 자신의 세계관으로의 출입을 의미한다. 'Pinkbox'는 소마가 구축한 오브제이자, 자신의 머릿속을 형상화한 하나의 물체이다. 즉, '나의 스무살'에 들어가기 전 이전의 소마를 향유하던 청자들에게 경고 혹은 긴장의 메세지를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2번 트랙(Walk)으로 이어지면서 역시 한 번에 들어볼 수 있는 가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들이 뭉개져 퍼져나간다. 트랙의 시작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리며, 1번 트랙보다는 조금 더 깊어지는 사운드가 돋보인다. 웅얼거리는 소리와 퍼져나가는 소리 중 명확하게 전달이 되는 메세지가 없어진 것도 1번 트랙과의 차이점이다. 가사들은 비트와 함께 어우려져 보컬과의 분리가 아닌 비트로서의 역할을 이루고 있다.


 '사막을 달리지/발이 꺼지질 않네/뭉친 모래알들이여'

달리는 듯 배경으로서의 역할을 노래는 가사를 흩뿌린다. 달리지만 꺼지지 않는 발은 계속되서 움직이는 모습을 형상화하게 된다. 빠르게 움직이는 흐름들 속에서 방황의 순간은 아직까지 포착되지 않았다. 무언가 쫒기는 듯한 사운드 연출과 하나가 된 가사 역시 배경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사건 전개의 방식이 아니라 소마라는 아티스트의 스무살(개인방송에서 언급)의 주변상황을 보여주는 듯 하다. 3번 트랙 (Mayday)로 갈수록 배경은 더욱 어두워져 간다. 크리피한 사운드와 직접 적인 가사의 표출은 적어지며 덥스텝의 사운드와 'mayday'라는 가사만 반복되고, 간간히 '저는 고깃덩어리입니다'라고 말한다. 2분 가량의 짧은 트랙에서 살려달라는 뜻의 'mayday'와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로 곡의 전체를 구성한다. '고깃덩어리'라는 단어는 자신의 생각에서 온전히 나올 수 없는 자아의 단어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즉,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받을 수 있는 감정과 영향을 가장 어둡게 말할 수 있는 트랙이 아닌가 생각한다. '방황'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더욱 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3번 트랙을 지나 4번 트랙(my world)의 불규칙적인 구조를 지나고 나면 5번트랙 (하루)으로 마무리가 지어진다. 소란스런 주변의 분위기와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배경의 역할을 하는 보컬. 5번 트랙에 와서야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착각을 들게한다.

'하루를 하루로 하루에  하루를 하루로 덮어'

점철되는 기억들이 모여 순간을 만든 앨범이다. 각자의 스무살은 모두 다르게 추억되지만, 아티스트가 자신의 기억을 디테일하게 말한다는 것은 새로운 순간이다. [환포(幻泡)의 소녀]에서 환포는 물거품을 뜻한다. 다소 수직적인 구조의 앨범커버와 교복을 입은 모습. 스무살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지만 그 자체로 스무살이전의 기억의 물거품, 혹은 지금의 소마로서 닿기 전의 물거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소마의 앨범과 EP가 몇장 나온 뒤 새롭게 소마가 말하는 지금의 소마의 프리퀄(Prequel)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의 소마가 표현되기 전의 강렬했던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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