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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Jul 22. 2022

연꽃향을 맡으며 달리기!

자두맛 같은 뜀박질!

시간 참 빠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5월 25일에 끝났으니... 두 달이 지났다. 의지만으로 걷던 순례길이어서 그랬을까? 5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은 하루에 1Km도 걷지 않았다. 이유야 간단했다. 걷기가 너무 힘들어서... 발바닥부터 연골, 뼈까지 쑤시지 않은 곳이 없어 남편이나 아들 팔을 잡지 않고서는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스틱 없이는 좀비나 다름없었다. 한 달을 진통 소염제를 먹으며 발을 주무르고 달랬다.  


한 달 반이 넘도록 발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아 이러다 평생 고생하는 것은 아닌지 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TV를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며 수시로 발바닥 마사지를 했다. 마사지 봉을 사서  발바닥을 쉬지 않고 자극했다. 정성이라서 그런 것인지 나을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두어 달 들어서며 발이 좋아졌다.  사실 순례길 후 발이 너무 아파 달리기 같은 즐거운 운동은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속으로 겁이 났었다. 한 달 푹 쉰 후 집에서 자전거를 탔다. 40분 타고 20여분 플랭크를 하며 몸풀기를 하니 그렇게 아프던 발바닥도 점점 잠잠해졌다. 


일주일 전에 줄넘기를 하고 싶어 살금살금 뛰어보니 할만했다. 이번 주에 달리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 달렸다. 오전에 비가 오고 날이 흐려 마음을 접었는데 오후 4시 즈음 흰 구름이 바람에 훨훨 날아가기에 오늘이면 나도 저 구름처럼 살랑거리듯 뛸 것 같았다. 구름이 지나가는 사이사이 파란 하늘이 방긋 웃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참 이상하다. 사람 맘이란 게 맘먹기에 달려 맘이 날아갈 듯 하니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말이다. 오늘이라면, 이 바람이라면, 이 구름 속 파란 하늘이라면 잘 뛸 것 같았다.  머리가 아파 두통약을 먹은 당직 없던 남편을 꼬드겼다. 혼자 뛰다 발이 아프면 어찌하겠는가? 늘 나의 꼬드김에 넘어가 주는 남편과 군산 은파 호수로 향했다. 


임 윤찬군의 라흐마니노프 3번 곡을 들으며 첫발을 내디뎠다. 올해 처음 뛰는 첫발이니 살살  내디뎠다.  작년 이맘때 땡볕 달리기를 했는데 오늘은 정말 뛰기 좋은 저녁 아닌가? 


해는 뉘엿뉘엿 지고, 오전에 내린 비에 공기는 시원하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다 쌩쌩 불어 모기며 날파리가 길을 방해할 수 없으니 뛰기엔 최상의 날이었다. 50m 즈음 지나가니 연꽃향이 가득 숨 속에 들어찼다. 은파호수 구석구석에 자리를 잡은 분홍색, 흰색 연꽃! 향기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은은한 연꽃향과 산들거리는 투명하게 비치는 연분홍 꽃잎들이 초록의 연잎 속에 우아하고 고운 자태를 뽐내니 말이다. 올해 처음 뛰는 내 무릎이 저절로 뛰어올랐다. 참 이상하다. 연꽃향은 이상한 마법을 부린다. 모든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아름다운 생각과 고운 마음을 저절로 갖게 하니 말이다. 


 서쪽으로 지는 햇볕이 은파호수에 반짝반짝 비나고 아름다운 18살 청년 임 윤찬군의 라흐마니노프 3번을 들으니 올해 처음 달리는 내 다리가 피아노 건반 위에 노니는 청년의 손가락처럼 움직여졌다. 남편이 두서너 발 뒤에서 뛰며 지나가듯 왜 이리 잘 뛰어? 순례길 다녀오더니 속도가 늘었네? 했다. 이상한 일이다. 한 바퀴를 모두 돌고 물을 허겁지겁 마셨다. 이제 발 걱정은 접어도 될 것이란 확신이 들어 기뻤다. 뒤꿈치 염증(사실 그게 족저근막염이었는데, 평지를 오래 걸으면 고통이 심한데 그걸 모르던 내가 주로 평지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었으니 발에겐 할 말이 없다. )으로 족욕을 십여 년 해왔지만 막상 순례길이 끝나고 나서 발이 아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걱정으로부터 벗어났다. 


 오늘! 연꽃향을 맡으며 여름 달리기를 하니 큰 걱정이 잦아들고 마음이 상쾌하다. 행복이 뭐 별것 있나? 혹여 하던 작은 걱정거리를 털어내니 행복하고, 남편과 연꽃향을 맡으며 폴짝폴짝 뛰어다녔으니 행복하고, 아직은 뜀박질할 여력이 남아있으니 행복하다. 남편이 딱 뛰기 좋은 속도라며 땀과 열기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바라봤다. 자두같이 빨갛게 익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남편 눈 속에 있는 나도 자두 같았으니 오늘 달리기는 자두처럼 달콤하고 상큼한 뜀박질이었다.   

달리기 하기 일주일 전 은파 호수다. 남편과 걸으며 다음 주는 뛸 수 있을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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