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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Oct 17. 2024

나는 아마 나비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이서윤,홍주연)

발령 3년 차부터 독서 모임을 꾸준히 해 왔다.
대상도 다양했다. 중학생, 고등학생, 선생님들, 이웃들, 내 아이들. 누군가의 운영에 참가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꾸려갈 때가 많았다.
조금 쉬어야 할 때도 했고,  바쁠 때도 했고,
언제든지 했다.
그런 독서모임을 20대에는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30대에는 내가 책 읽는 모임을 '좋아하는구나'까지 알아차렸다.
40대가 된 지금은 '잘'이라는 부사를 빼고 '내가 그것을 할 줄 안다'는 단순한 생각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나의 좋아함이 더 선명해 보였다.

'채식주의자'를 첫 책으로 읽기 모임을 다시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막상 인원이 모집되고 나니 또 불안이 슬금슬금 올라왔다.'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잘해야 한다고 집착할까. 아이들에게 그런 기대를 품지 않는데 유난히 스스로에게는 그렇다.


A유형 : 불안을 연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적절한 불안은 이들에게 집중도와 효율성을 끌어올려 주는 원동력이 된다.
B유형 : 감정을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어진 행운을 순탄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불안이 일상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불안이 올라올 때 행동전략으로 A형과 B형을 소개하는데, 깊이 고민할 것 없이 나는 B다.
B유형의 사람들은 불안이 올라올 때 평소의 생활 루틴을 유지하며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임용 3수차에 딱 그랬다. 실제 시험에 맞춰 도서관에 앉고, 교육학과 전공 순서로 모의고사를 푸는 루틴을 한 달동안 유지했는데 합격으로 이어졌던 걸 보면 나에게 적절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B유형의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1.과한 행동을 하지 말 것
2.쾌락에 탐닉하지 말 것.
3.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말 것.

요즘 나는 B유형이 빠지기 쉬운 함정 구덩이, 특히 1과 3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중이었다.
'채식주의자'를 읽기로 정하고나니 이것도 읽자, 저것도 읽자 하고 싶어졌지만 어쩐 일로 신중을 기하는 중이었는데 잘하고 있는 일이었다.
또 이번 책모임을 계기로 브런치에서 새롭게 연재할 주제를 구상한 참이었고, 심하게 긍정회로를 돌리는 중이었다고 고백한다. 2년 뒤에는 휴직하고 읽고 쓰는 시간으로 교직 연봉만큼 벌 생각을 했으니 말 다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이루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로 이루어진다고들 하니까...
지나친 낙관이 습관이 됐다.


사람들이 자기만의 소산구조를 이루게 되면 눈 결정체처럼 각자 아름답게 변화한다.


작가의 이전 책   '더 해빙'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로 처음 알게 된 작가들의 이력이 특이하다.
굉장히 똑똑하고, 지혜롭고, 능력있는 사람인 듯 하다.
직관과 미지의 영역인 '운'을 엔트로피와 소산구조라는 물리학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천상 문과인 나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운'의 속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개념이 물리학에 있다니 놀라울 따름.
책의 설명에 따라 차근차근 나를 이해해 가는 데 세 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두께에 비해 몰입감도 있었다.

동화책 '꽃들에게 희망을'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애벌레가 읊조린 말이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꼭 기록해 두고 싶었다.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내 안에 고치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아마 나비가 될 수 있는 자질도 있을 거야.(255쪽)


나는 아마 나비가 될 수도 있을거야.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을 하면 될 거야.





* 본 매거진은 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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