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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종종 급식소가 된다.

기꺼이 급식소가 되는 이유

by 다정한 시옷

삼각김밥이 먹고 싶다는 여덟살이의 취향을 존중해 쿠팡을 뒤졌다. 삼각김밥 틀과 50장짜리 삼각김밥용 김을 샀, 3일 만에 마흔 두 개쯤 만들었다.

집 앞의 강다짐과 견주어 아주 손색없을 정도로 삼.김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삼김을 만들어먹던 첫날, 열두살이가 놀러 나가며 '친구들도 하나씩 주고 싶다'고 혼잣말 비스므리하게 중얼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는 나란 엄마, 섬세한 엄마.

새 밥을 지어 참치마요와 김치베이컨 맛의 삼김을 만들고, 따뜻한 매실차를 텀블러에 넣어,

후식으로 몽쉘통통까지 챙겨 놀이터에 나갔다.

만날 모여 노는 친구들인데, 주로 야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다.
이만큼 키웠으면 사실 어디서 뭘 하고 놀든 신경을 끄는 게 맞지만, 종종 간식을 챙겨 나가 본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초코파이를 풀어놓거나 아주 가끔 컵라면을 쏘기도 한다.
(논다고 살 빠지면 이모가 혼낸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하면
가끔 집으로 모여드는데
그 집이 우리 집일 때, "밥 먹고 가라"한다.


"00 아버님, 애 밥 멕여 보내도 되죠?
@@도 있고, ♡♡도 있어요."
"아니, 그 집은 급식소인가요?ㅋㅋ"
"네, 그런가 봅니다~ㅋㅋ"



기꺼이 급식소가 는 이유는_


나의 큰아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 '요즘 보기 드문' 아이다.

시간이 나면 책을 보거나, 피아노를 치지만,

가장 시간을 들여하고 싶은 놀이는 야구다.

야구는 혼자서 못 한다.

야구를 하려면 1) 친구가 최소 둘 이상은 필요한데,

2) 야구 장비를 갖춘 친구라면 더 좋다.

3) 친구가 학원스케줄로 바쁘면 조건 1),2)를 갖추더라도 말짱 헛일이다.

모든 조건을 갖춘 친구를 찾기가 별따기와 같은데, 운이 좋게도 큰 아들은 그런 친구가 있고,

그들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나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야구하고, 자전거 타고, 밥 먹으며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종종 간식을 챙긴다.

뿐만 아니다.

열심히 밥 먹으며 제 집처럼 드나들다 보면,

해가 서쪽에서 떴을지 모르는 날에는 급식소가 공부방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서로 해야 할 공부나 숙제가 밀렸을 때 문제집을 주섬주섬 들고 모이 것이다.

일요일은 자기들끼리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기도 하는데, 엄마들끼리 자주 연락하거나 따로 만나는 사이가 아니지만 느낌이 온 다.

'아, 이 집도 책 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사진 잘 찍으시라 비켜앉는 센싀
수학문제 설명 중
일요일 오전, <동물농장>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간다. 나는 산책삼아 걸어갔다가 조용히 예쁜 모습만 몰래 담고 나온다.

취향이 맞고 마음 맞는 친구 사귀기는 언제나 어려운 일인데,

참 고마운 일이다.

좀 더 크면 영, 수 학원도 같이 다니고, 야자도 같이 하고, 여자친구도 소개해주는 그런 미래를 혼자 상상해 본다.

그땐 간식 싸서 따라다니긴 그렇고,

카드를 줘야지.

요즘은 마라탕인데, 그때 아이들은 뭘 사 먹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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