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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Mar 02. 2024

우리의 불만이 의견이 되려면

'떴다, 불만소년 김은후', 이수용

우리 집에도  불만 어린이들이 산다.
한 명이 하나씩만 얘기해도 세 가지가 되니까,
체감하는 양육 난이도가 훅 올라간다.


- 왜 책 보면서 밥 먹으면 안 돼요?

- 왜 아이들은 아침에 밥 먹고 어른들은 시리얼 먹어요?

- 왜 어른들은 어린이들보다 늦게 자요?(일하는 거야) 티브이도 보잖아요(낮엔 어린이들 위해서 살았으니까, 밤엔 어른들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야)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 <불만이 있어요>가 발언에 불을 붙였다. 나와 배우자는 그림책 속 아빠처럼 유머가 넘치지 못해서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평소 F성향 어디로 가고 T중의 왕 T로 대응하는 편이다.
논리가 발달하지 않고, 순하고, 눈치 빠꼼이 동생들은 엄마아빠의 한 마디에 더 묻지 않지만, 논리가 적당히 발달하고 자기 생각이 분명해진 11살이가 문제다.
엄마아빠 말에 겉으로 수긍한 척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대로 수긍하고 마는 자기 자신이 가장 불만인 것 같다.

아빠가 무섭단다.
겁이 나서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겠다고.
상대적으로 허용 범위가 넓은 나에게 불만을 가지면 좋으련만, 꼭 아빠에게 불만이 생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둘 다 밥 먹는 자리에서 핸드폰을 한다. 아빠는 업무적인 연락을 주고받고, 삼 일 전에 핸드폰을 바꾼 열한살이는 할 것 없어도 자꾸 폰에 손이 간다.
아빠가 핸드폰 넣어라 한 모양이다.
열한살이는 진짜 궁금함 반, 반항심 반으로 "아빠도 핸드폰 하잖아요?" 했다. 
(아이고, 아들~)
아빠가 따끔하게 야단쳤다.
"아빠는 일이 있어 연락하는 거지만 너는 그런 게 아니지 않냐. 그리고 어디 어른과 아이를 똑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냐, 건방지게!"
(아이고아이고, 아부지~)


아들도 해볼 수 있는 말이고
아부지 말도 틀린 게 없고.




편들 문제가 아니지만 나는 이 편 저 편 다 들고 싶어 진다.


"어른도 언제나 옳은 의견을 내는 건 아니지 않나요?"(93쪽)


'떴다 불만소년 김은후'의 은후가 이렇게 말한다. 동네 공원 이름 공모전에 떨어진 뒤 결과에 의문을 품고 구청에 민원을 올리다가 어린이 정책담당자에 지원 면접을 보며 한 말이다. 은후의 말이 당돌이 아니라 당당하게 들리는 것은 어른들이 제 의견을 말할 판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업무적인 연락이라지만, 꼭 지금이 아니면 안 될 정도의 문제였을까. 엄마아빠가 평소에도 자주 핸드폰을 손에 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 갑자기 품은 의문은 아니었고, 언제고 한 번은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달라질 게 없다고 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일까? 은후는 이 상황을 제대로 알고 싶고, 또 알아야 했다.(65쪽)


안타까운 건 발언의 판이 깔리지 않은 상황이었고, 부모들이 똑같은 말도 되바라지게 표현하는 청소년들을 꾸준히 봐 온 탓에 조금이라도 불손한 어조와 태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보다 중요한 태도, 그놈의 태도, 공손한 태도.


공손은 누구의 언어일까.


나이 어린 사람이 그보다 나이 많은 어른에게 쓸 수 없다는 점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가진 언어다.
공손한 태도를 요구하기 전에 어린 사람의 생각을 들어줄 준비가 충분히 되었는지 살피지 않는 잘못은 따지지 않는다.
나는 열한살이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겪을 '공손'의 문제는 네가 다 지고가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한동안 스벅에서 책 대화하기에 소홀 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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