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정 Jul 19. 2023

달팽이는 어디로 갈까

작별의 날

 지난해 여름 조카네 집에 놀러 갔다가 명주달팽이를 분양받았다. 조카가(사실은 새언니가) 키우던 달팽이가 낳은 삼백 개 가량의 알이 부화한 것이다. 새언니는 그중 반을 덜어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담아 내게 줬다. 약간의 코코피트, 칼슘 가루와 함께.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플라스틱 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전까지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강아지든 고양이든, 초등학교에 다닐 때 종종 길가에서 팔던 병아리도. 친구들이 키우는 동물들을 보며 귀엽다 쓰다듬기는 해도 키워보겠다는 생각은 썩 들지 않았다. 크든 작든 어떤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데 대한 용기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얼떨결에 좁쌀보다 작은 백여 마리의 달팽이들을 책임지게 됐다. 숨을 쉴 수 있게 작은 구멍을 여럿 뚫어놓은 플라스틱 통 뚜껑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들은 아주 자세히 보아야만 달팽이임을 알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다행히 달팽이는 참 키우기 쉬운 동물이었다. 하루에 한 번, 가끔은 이틀에 한 번, 잘 있나 들여다보고 똥을 치우고 먹이를 갈아주는 게 다였다. 상추, 당근, 애호박, 버섯 등을 조금만 잘라 통에 넣어주면 달팽이들은 알아서 잘 먹고 알아서 잘 똥을 쌌다. 먹은 것과 똑같은 색의 똥을. 그 명쾌함이 마음에 들어 처음의 막막한 기분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얘네들이 크는 건지 안 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성장이 더뎠는데, 두어 달이 지나니 몇몇 아이들은 쌀알만 해졌다. 먹이를 주면 그 조그만 달팽이집(껍질)에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몸이 나와 길쭉한 더듬이 한 쌍과 짤막한 더듬이 한쌍을 쏙 내미는데, 제법 귀여웠다. 그렇지만 백여 마리를 계속 키우는 것은  역시 무리인지라, 호수 근처 습지에 대부분을 방생하고 네 마리만 남겼다.


 나는 네 마리에게 각각 명, 주, 달, 팽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명은 활발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주는 덩치는 제법 큰데 조심성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달은 넷 중 가장 작았지만 성깔 있어 보였다. 팽은 정말 잘 먹었고 그래서인지 넷 중 가장 컸다. 나는 칸막이가 있는 플라스틱 통을 사 숨구멍을 뚫고 (짝짓기 예방을 위해) 이들에게 1인 1실, 아니 1달팽이 1실을 배정했다. 명, 주, 달, 팽은 KTX를 타고 서울과 강릉을 오가기도 했고, 내가 제주 여행을 떠난 동안에는 조카네 집에 돌아가 머물기도 했다. 웃풍이 있는 서울 집에서 겨울을 잘 날까 걱정도 했지만 거뜬히 버텨내며 쑥쑥 자랐다.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줘도 파삭 부서질 것만 같았던 달팽이집들이 점점 단단해졌고, 잘 보이지도 않았던 몸은 아기 손가락 같아졌다. 특히 팽은 최대한 몸을 뺀 길이가 5cm를 넘었다. 그 몸이 집 안에 다 들어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동안 나는 명, 주, 달, 팽에게 길들여졌다. 이 친구들을 돌보는 일이 백수의 일상에 몇 안 되는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나는 이 친구들이 단단한 알배추보다 부드러운 상추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얇은 모서리를 타고 움직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 나는 매끄러운 탁자 위에 달팽이들을 올려놓고 한참 동안 지켜보고는 했다. 점액으로 구불구불 길을 만들며 돌아다니던 달팽이들이 탁자 끄트머리에서 허공을 향해 더듬이를 쭈욱 내밀 때, 나는 이 친구들이 누가 저지하지만 않는다면 세상 끝까지 기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러워했다. 직접 집을 지을 수 있다니, 그 집을 등에 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니, 어디서든 집 안에 쏙 들어가 몸을 뉘일 수 있다니, 집이 부동산이 아닌 동산이라니!


 백수가 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내게 집이라는 존재의 소중함과 지겨움은 동시에 커졌다. 움직이지 않는 집은 나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나를 묶어두고 괴롭힌다. 겨울에는 수도가 얼면 어쩌나 계량기가 동파되면 어쩌나, 여름에는 곰팡이가 슬면 어쩌나 벌레가 들어오면 어쩌나, 진짜 내 집도 아닌데 어디가 망가지거나 부서지면 어쩌나, 그 큰돈을 담보로 두고 이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맞나, 나는 언제 진짜 내 집을 갖게 되나… 집에 있을 때나 집을 비울 때나 실체 없는 집을 등에 괜스럽게 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진짜 자기 집을 등에 진 명, 주, 달, 팽이 눈물 나게 부러웠다. 진짜 집에 사는 그들을 내 가짜 집에 가둬놓았네.


 여름이 무더워지기 전 어느 날, 며칠 동안 힘없어 보이던 팽이 알을 낳았다. 십여 개의 미색의 알들(아마도 무정란일 테지만)을 보고는 작별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란 이 친구들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플라스틱 통 속에서 끝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다시 호수 근처 습지를 찾아 녀석들을 놓아줬다. 혹여 금세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될지언정 진짜 땅을 느끼고 풀냄새와 흙냄새를 맡으며 살아보기를.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를. 가고 싶은 데까지 가보기를. 어차피 너희의 집은 너희에게 있으니까. 안녕, 달팽이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머리 자르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