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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by 모과

들어올 때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겨 긴장하게 만드는 분들이 간혹 있다. 이날은 카운터 바로 옆에 위치한 바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두 손님이 그랬다. 이미 꽤 취한 상태로 가게에 입장한 두 사람은 무슨 답답한 일이라도 있는지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돌연 가게 직원인 L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야 너 목소리 좋다. 앉아서 같이 한 잔 할래?”


L의 목소리가 좋은 건 사실이다. 묵직하게 깔리는 그의 저음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중년의 남성들이 그렇게 직접적인 관심을 보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직원들은 당황했고 나 역시 긴장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상황을 주시했다.


“야 이 새끼 목소리 진짜 좋아. 일로 와바! 너 노래 한 곡 해볼래?”


수위가 점점 세졌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너무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는 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 더 고약한 노릇은 내가 직접 가서 응대를 하면 사장이랍시고 나에겐 또 존댓말을 한다는 점이었다. 드라마 속 정의로운 주인공들은 보통 이런 상황에서 한 번씩은 나선다. 사장으로서 나서야 될 타이밍이었다.


“저 근데 혹시.. 저희 직원.. 이 친구 원래 아세요?”

“왜요.”


역시 갑자기 말을 높인다


“왜 자꾸 반말을 하고 그러세요. 욕도 하시고 그러시면 안 되죠”

“하 참. (L을 보며) 야! 너 뭐 불쾌해? 반말해서 불쾌해?”


갑자기 이목이 L에게 집중됐다.


“어... 아니요...”


음? 아니라는데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아니래잖아! 별 꼴값이야. 됐어요. 조용히 먹고 갈게요. 됐죠?”


나는 뭔가 뻘쭘해져 내 자리로 돌아왔다. 손님들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신청곡을 요구하더니 스피커 앞에 서서 본인의 신청곡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한층 약해진 내가 몇 번을 조심스럽게 제지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더 이상 L이나 다른 직원들에게 집적거리진 않았다는 것 정도다. 손님들이 가고 나서야 승호가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형... 근데요.”


오늘따라 승호 특유의 저음이 더 낮게 들렸다. 고맙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사장으로서 내가 미안하다.


“제가 사실 팁을 받았는데요.”


알고 보니 그날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그 손님들로부터 팁을 받았다. 물론 승호는 그중에서도 제일 많이 받았다. 그날 내가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우리 매장 직원의 존엄...? 사장으로서의 내 자존심? 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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