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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에 대한 몇 가지 단상

by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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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를 주문하면서 조금 우습다고 생각됐는지 괜히 킥킥 웃는 손님들이 있다.

“저기요, 짜파게티 풉- 하나 주 세요.” 이런 식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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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손님이 나를 부르더니 “여기 와인 한 병이랑 짜장면 하나 주세요!”라고 했다. 역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괜히 웃음이 나와 혼자 킥킥 웃고는 직원들에게도 알려주니 직원들도 킥킥킥. 메뉴 하나로 여러 사람을 웃길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계속 팔 이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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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짜파게티란 어릴 적부터 아주 좋아했던 음식이자 평소 즐겨 먹는 야식이다. 맛있게 잘 끓일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1) 우선 물 600 ml(3컵정도)를 끓인 후 면과 후레이크를 넣고 5분 더 끓인다.

2) 물 8스푼 정도만 남기고 따라 버린 후 과립스프와 올리브조미유를 잘 비벼 드시면 된다.


는 물론 내 조리법이 아닌 짜파게티 봉지 뒷면에 나와있는 조리법이다. 누군가 말하길 모든 라면은 봉지 뒷면에 나와 있는 대로 끓이는 게 제일 맛있다 하는데, 대부분 그렇겠지만 "물 8스푼을 남기고 따라 버려라"같은 지시사항을 도저히 따를 수는 없는 관계로 그냥 끓이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약간 들쭉날쭉했는데 세월을 거치며 물을 얼마나 남겨야 하는지 정도는 감으로 해결하고 있다. (간장게장) 김수미 스타일인 것이다.


짜파게티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메뉴다. 홀로 가게를 운영할 땐 짜파게티처럼 힘든 게 없었다. 라면과 달리 중간에 물도 한 번 버려야 하고 소스가 고루 퍼질 수 있도록 나름의 웍질도 해줘야 한다. 잠깐 딴청이라도 피우면 또 금세 졸아버리니 만드는 중간에 다른 주문이 치고 들어올 때면 바짝 긴장이 된다. 심지어 옆에는 계란프라이가 빠른 속도로 부쳐지고 있다. 어쩌다 2개, 3개가 들어오면 주문을 받을 때부터 신경이 곤두선다. 여기가 와인집이냐 짜파게티집이냐. 내가 와인보다 짜파게티 봉지를 더 많이 오픈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쯤 짜파게티에 대한 애정은 거의 사라졌다. 방송에 나오는 셰프들처럼 그릇의 테두리를 닦으며 스스로 짜파게티 요리사라 여기던 초심은 실수로 종종 터트리던 계란 노른자들과 함께 서서히 뭉개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야식으로 짜파게티를 먹지 않는다. 8년 간 함께 지지고 볶이며 물려버린 탓도 있지만 더 이상 야식으로 짜파게티 같은 유탕면 (이렇게 부르고 싶지 않지만 나무위키에 쳐보니 이렇게 분류되어 있네..)을 먹기엔 위에 부담이 가는 나이가 돼버린 탓도 있다. 안 그래도 블로그를 쓴다고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짜파게티 블랙을 야밤에 해 먹었는데 그 뒤로 며칠간 위장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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