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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파게티 vs 짜짜로니

by 모과

작년 봄 농심에서 '짜파게티 더블랙'이라는 게 출시됐다. 짜파게티 사천에 이은 세 번째 버전이다. 생각보다 짜파게티(정확히 하면 짜장라면) 종류가 많다. 짜파게티를 시작으로 삼양 짜짜로니, 오뚜기 진짜장, 농심 짜왕, 팔도 짜장면 등. 물론 나름의 팬층을 나누고 있는 일반 라면에 비하면 짜파게티가 압도적이다. 이름마저 일종의 고유명사화돼버렸으니.


개인적으로 짜파게티의 클래식한 맛을 제일 좋아한다. 짜파게티는 그냥 짜파게티인데 자꾸 거기에 뭘 더해서 이건 짜장면이나 다름 없습니다! 라고 하니, 그래서는 인기를 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십분의일에선 8년째 짜파게티만 쓴다. 트러플 오일이니 그런 것도 다 필요 없다. 그냥 들어있는 조미 올리브유만 뿌려주고 치즈에 계란만 얹으면 금상첨화. 훌륭한 와인 안주가 탄생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짜짜로니 애호가를 만나게 됐다. 짜짜로니...? 그나마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먹어본 적은 없다. 의문의 애호가에 따르면 넘사벽 짜파게티에 눌려서 그렇지 사실 진짜 맛있는 건 짜짜로니라는 것이다. 이름부터 어딘가 수상쩍은 짜짜로니였지만 추천을 해준 애호가가 평소 워낙 믿을 만한 사람이었고 진정성 있게 치고 들어온 탓에 조금 설득되어 버렸다. 결국 짜짜로니 샀다. 혹시 모르니까 한 봉만 샀다. 경건한 마음으로 짜파.. 아니 짜짜로니를 최선을 다해 요리했다. 익숙하지만 남의 물건, 남의 집 애를 데려왔을 때의 그 조심스러움이 짜짜로니를 다루는 나에게도 묻어있었다. 혹시나 허투루 만들어 하나뿐인 짜짜로니를 망쳐버리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처음 먹어 본 짜짜로니는, 맛있었다. 사실 맛있을 수밖에 없는 그 맛이다. 짜장라면이니까... 차이가 있다면 약간 더 진하고 담백.. 한 맛? 실제로 짜짜로니는 '간짜장 같은 맛'이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맛있었다고 하니 짜짜로니 애호가는 더 신이 났다.


생각보다 짜짜로니 먹는 사람 많을걸? 생각해 봐. 짜파게티의 완전한 독점이라면 어떻게 지금까지 짜짜로니가 나오고 있겠어.


어느새 애호가는 단순한 취향을 넘어 논리와 데이터를 활용한 말하기를 하고 있었다.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매장에서 짜파게티 종류를 고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요즘 어느 카페에 가도 원두를 고르게 한다. 고소한 걸로 드릴까요? 산미 있는 걸로 드릴까요?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해져 버린 제안과 질문. 우리도 마치 카페에서 원두를 고르듯 짜파게티와 짜짜로니, 두 가지 짜장라면을 구비해 두고 맛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짜파랑 짜짜 두 가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음... 저는 그냥 짜파게티로 할게요. 너는?

난 짜짜로 할래 ㅋ


오랜 세월 짜파게티 독점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두 가지 짜장을 함께 취급하는 시대로 넘어간다. 그래 짜파게티 맛집으로서 이 정도 발전은 있어야 한다. 나는 이 대박 아이디어를 들고 멤버들에게 갔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외로 차가웠다.


멤버A : 굳이 왜 그런 선택을 만들어. 정신없게

멤버B : 흠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멤버C : 쓸데없는 짓 하지마.


이 감 없는 놈들. 회사에서 컴퓨터나 하는 놈들은 현장을 너무 모른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직원들에게 달려갔다.


직원A : 그럼 두 개 동시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맨날 따로 끓여야 되나.

직원B : 저희는 화구도 없고 그냥 브루스타인데... 후라이팬부터 하나 더 둬야겠네요 ;


역시 현장에 있는 친구들은 달랐다. 그렇게 카페에서처럼 우아하게 손님들이 원두... 아니 짜장을 고르게 만드는 풍경을 꿈꿨던 내 소소한 아이디어는 빠르게 묻히고 말았다. 8년째 짜파게티를 볶고 있으서면도 나는 새로운 짜파게티가 나올 때마다 이때를 떠올린다. 더블랙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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