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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단골이었다

by 모과

단골은 원래 무당을 뜻하는 말로, 전라도 지역에서 무당을 '당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작은 마을에서 무당은 손님이 찾아가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무당이 마을로 내려와 제사를 지내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당골이라는 단어에는 자연스럽게 서로 자주 고정적으로 찾아간다는 의미가 묻었나 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골은 단골로, 그 뜻은 '단골 무당처럼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곳 또는 손님'으로 변했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어감이 귀엽다. '단골'


살아가며 단골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굳이 커피나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하나쯤 단골 가게는 존재한다. 나의 첫 단골 가게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 슈퍼였다. 학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슈퍼. 물론.. 작다고 하기엔 취급하는 물건이 너무 많긴 했다. 그 시절엔 그곳이 우리들의 다이소이자 세븐일레븐이었으니까. 사장님 부부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뒀다. 심지어 준비물을 까먹었을 때 거기 가면 "너네 반은 오늘 스케치북 작은 거 가져가야 돼" 하고 사장님이 먼저 준비물을 챙겨줄 정도였으니. 나는 불장난을 하려고 아빠 심부름인척 하며 성냥을 사려다가 사장님에게 혼이 나기도 했고, 입구에 놓인 오락기를 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백 원을 꾸기도 했고, 바깥에 놓인 아이스크림 통에서 하드를 훔쳐가는 윗집 동생을 보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5학년 때 전학을 가기 전까지 꼬박 4년을 그곳을 들락거렸다. 아이들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사장님의 얼굴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사장님이 바뀌는 한이 있어도 슈퍼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십분의일에도 다양한 단골이 있었다. 한 때는 어떤 중년의 내외분들이 거의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우리 와인 바를 찾았다. 늘 레드와인 한 병에 감바스를 시켜 드시고 조용히 일어났던 분들. 따로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내심 반갑게 눈빛을 주고받고 더 친절하게 대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들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마음이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든다. 그분들은 왜 이른 저녁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았던 걸까. 와인이 저렴해서? 감바스가 맛있어서? 그냥 퇴근길 동선과 잘 맞아서?

말을 트고 호기심을 해결해 준 단골도 있다. 역시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는 여자 두 분이 있었는데 올 때마다 매번 인스타 스토리를 올렸다. 그렇게 존재만 알다가 게시물을 올린 분들에게 굿즈 이벤트를 할 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다. "저희 명동에서 미용하고 있거든요" 목요일이 휴무라 수요일마다 이곳을 방문한 그분들은 십분의일 멜론이 유독 맛있다고 했다.


문득 내 가장 오래된 단골집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해져 네이버 로드뷰로 검색을 해봤다. 20년이 훨씬 더 됐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다니던 등굣길을 잊을 순 없다. 아니 그런데... 슈퍼가 있어야 할 자리엔 웬 빌라가 한 채가 뻔뻔한 얼굴로 서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내가 혹시 잘못 찾은 건가? 싶어 한참을 뒤져봤지만 역시 슈퍼 같은 건 흔적도 없다. 아니 그럼 초딩들은 어디서 준비물을 사고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는 어떻게 사 먹는 건가. 쿠팡에서 시키나...?


불현듯 십분의일도 언젠가 없어지고 그 자리엔 로드뷰에서 본 빌라처럼 뻔뻔하고 하얀 얼굴의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그래서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 앞 슈퍼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무당을 단골로 부르지 않은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단골이라는 단어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단골 가게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는지



*댓글로 나만의 단골가게와 단골이 된 이유를 남겨주세요. 한 분을 선정해 십분의일 굿즈를 선물로 드립니다. ~11월 말까지!


양남초.jpg 정문도 참 세련되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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