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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an 24. 2021

지구만큼 무거운 엉덩이

물구나무서기, 얼마나 어렵게요?


이 매거진에 물구나무서기 연습과 관련된 글들을 써서 올리면서, 물구나무서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꽤나 자주 반복하게 되었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쓸 때마다 약간의 자의식을 느끼곤 했는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게 아닐까?’, ‘사실 이게 별로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텐데…’ 혹은 ‘푸념이나 엄살처럼 느껴지면 어떡하지?’ 따위의 생각들이었다. 그래서, 아예 본격적으로 물구나무서기가 나에게 얼마나 어려웠고 여전히 그러한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에 대해 한 번쯤 신명 나게 푸념을 떨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구나무서기, 어쩌면 한 번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제도권 교육을 받고 자란 나와 같은 여성들 중에는 아마도 살면서 물구나무서기 같은 것을 시도해야 할 이유가 거의 없었던 사람들이 절반 이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들의 경우, 청소년기에 학교 체육 시간에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해봤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는데, 여성들의 경우는 체육시간에 물구나무서기를 해봤다는 사람들은 별로 보지 못했다.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 과정에는 그런 종목이 없는 것인지 선생님들이 자체적으로 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 역시 체육 시간에 물구나무서기를 해보라는 요구를 받은 적은 없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에게는 물구나무서기를 잘 시키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이것이 여자 청소년들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순도 100% 나의 추측이다.)


청소년기에 신체적 변화를 겪으며 여자 청소년들은 남성에 비해 상체 근력이 잘 발달되지 않는 가운데 골반과 엉덩이가 더 커지면서, 무게 중심이 골반 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무게중심이 지면과 가까울수록 안정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점프를 하거나 몸을 거꾸로 세우는 것처럼 무게중심을 크게 바꿔야 하는 동작들을 수행하기에는 조금 더 불리해진다. 당연히 개인차가 크다는 것은 항상 상기해야 할 중요한 측면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차이가 경향성으로서 나타는 것 역시 부정하기는 어려운데, 여성과 남성들에게 요구되는 신체 능력이 다르다는 점이 이러한 경향성이 강화되는데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점점 더 ‘여성적’인 신체가 되도록, 또 누군가는 전형적인 ‘남성성’을 띠도록 사회, 문화적으로 ‘교육’ 받는 것이다.


특별히 몸이 가벼운 편도, 상체 근력이 좋은 편도, 남다른 운동 신경을 타고난 것도 아닌 ‘한국 여자’였던 나에게 물구나무서기는 무진장 어려운 과제였고 지금도 그렇다. 심지어 나는 상하체 발란스가 좋지도 않았다. 상체는 심하게 빈약했고, 하체는 그에 비해 튼튼했다. 그리고 내 몸이 이렇다는 인식이 강했기에, ‘나는 엉덩이가 커. 나는 다리가 무거워. 나는 가슴이랑 팔이 빈약해. 나는 상체 힘이 약해.’ 따위의 생각들도 나의 몸을 이중 삼중으로 옭아맸다. 그렇다. 물구나무서기는 어렵고, 우리 사회 여성들이 쉽게 발달시키기 어려웠던 많은 근력, 특히 상체의 근력을 요구하며, 충분한 힘과 용기가 없으면 자칫 다치기도 쉬운 그런 운동이다. 내가 들어 올리려 애썼으나 늘 어김없이 나를 바닥으로 잡아당겼던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내 엉덩이의 무게였지만, 내 몸은 무겁고 이 과제는 나에게 버겁다는 인식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무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처음 물구나무서기를 할 때 내가 감지한 나의 엉덩이는 지구만큼이나 무거웠다. 거꾸로 몸을 세우기 위해서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다리를 몸통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이 1단계부터가 곤혹스러운 도전이었다. 엉덩이를 들어 올리기에는 내 엉덩이가 너무 무거운 느낌이었고, 그걸 안정적으로 받쳐 주기에는 나의 두 팔과 가슴이 너무 힘을 못 쓰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다가 팔이 무너져서 고꾸라진 적은 없지만, 등이 뒤로 넘어가는 것도 바닥을 지지하고 밀어내는 상체 힘이 약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밀어내는 힘을 충분히 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다리가 넘어가더라도 브릿지 자세처럼 몸이 젖혀질 텐데, 미는 힘이 충분하지 않으면 어깨와 팔이 무너지면서 등으로 떨어지거나 심지어 머리를 바닥에 찧는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두 팔 중 더 약한 쪽으로 몸이 기울면서 넘어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골반과 하체를 들어 올렸다고 해서 또 만사 오케이도 아니다. 일단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하고 나면 올라간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여기서 균형을 잡으며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전에 아쉬탕가 수업을 들을 때, 그 선생님이 균형 자세들은 올라가서 1초만 버틸 수 있으면 계속 버틸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준 적이 있다. 그때는 올라가지조차 못하는 균형 동작이 대부분이었던 때라 그 이야기를 솔깃하게 들었고, 뭔가 마음에 희망이 싹트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웬걸… 1초를 버티면 계속 버틸 수 있다는 이야기에는 뭔가가 많이 생략되어 있었다. “1초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 1초 버티기를 오래오래 연습하다 보면 1초가 겨우 1.2초가 되고, 1.2초가 1.5초가 되고 1.5초가 2초가 된답니다. 그렇게 연습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물론 사람에 따라 이 언제가 언제인지는 다르겠지만, 꾸준히만 연습하신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계속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 이런 말씀이셨던 거죠?


이외에도 물구나무서기가 왜 어려운 지를 설명해 줄 이유들은 많다. 사실 평생을 다리로만 버티며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팔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요가를 하다 보면 이렇게 팔로 몸을 들어 올리는 암-발란스(Arm-Balancing) 자세들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는데, 다양한 암-발란스 자세 중에서도 물구나무서기는 특히 어려운 자세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직립과 거의 정 반대의 정렬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두 팔을 뻗어서 바닥을 짚고 두 다리를 반대로 뻗으면 바르게 설 때보다 팔 길이만큼 키가 커지고, 그만큼 (위치 에너지가 높아지면서) 불안정도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하게 물구나무서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동작들을 큰 어려움 없이, 별 두려움도 없이 해내는 분들이 있다. 내가 몸을 많이 쓰는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혹자가 당연하고, 수월하게 해낸다고 해서 그 일 자체가 당연하고 쉬운 일인 것은 아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서도 어린 시절부터 별 연습 없이 물구나무서기를 잘했다, 지금도 그렇다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축하드린다. 당신은 나와 같은 누군가가 정말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축복받은 신체 능력을 타고 나신 거다. 애석하게도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그런 몸을 물려주시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다른 좋은 것들을 많이 물려주셨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실함이다.


그래서 나는 물구나무서기도 ‘성실하게’ 연습하기로 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the-photon-trap on Foter.com /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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