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간 함께 '연극'을 만들 여러분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최희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연극' 수업을 할 거예요.
저와 지난 금요일에 이미 만난 학생들도 있고 내일 처음 만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는 처음 만나는 여러분과 어떤 얼굴과 목소리, 어떤 몸짓으로 만나게 될지 상상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이 두근거림은 여러분을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 궁금한 기대감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만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는 저에게 외계인이냐고 물어보더군요. 담임 선생님께서, 제가 별에서 온 것처럼 낯설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친절히 해설을 해주셨답니다.
맞아요. 여러분은 제가 외계인처럼 낯설 테고, 저 역시 여러분들이 어떤 몸을 가지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다른 별에서 온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가 첫 만남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경계만 하다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솔직한 저를 보여주고 또 여러분의 한 조각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아마도 저는 여러분이 표현하는 것을 다 알아듣지 못할 거예요. 어쩌면 거의 대부분은 못 알아듣고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러분들 모두가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있음을, 또 각자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기억하려 합니다.
제가 우리의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들이 표현하는 것들의 가치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들마저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표현하는 여러분도, 또 그것을 이해 못 하는 다른 이들도 무언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사실 날카로운 언어와 그럴듯한 몸짓으로 '소통'을 시도해도 서로의 진심과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어렵고, 정확히 전달되는 것보다는 오해하는 것이 더 많으니까요.
어쩌면 예술은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소통이 정확하지 않은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힘차게 주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한때 연극이 '소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연극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고민하고, 내가 보는 연극에서 어떤 이야기를 듣지 못하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극이 소통을 위한 '만남'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통'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났다는 것에, 정말로 너의 몸과 나의 몸이 만났다면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에 우리가 내일 서로가 하는 말과 몸짓의 의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다만 서로의 옆에, 앞에서 만날 수는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무언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또 귀 기울일 거예요.
우리의 '연극' 수업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 만은 잘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여기에, 옆에, 앞에 있기, 보기, 듣기 그리하여 만나기.
내일 막상 여러분과 만나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시간이 없을 테지만, 수업에 임하는 마음을 이렇게나마 정리해 봅니다.
그럼, 내일 만나요 우리.
최희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