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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un 03. 2023

몸으로 만남

2023.06.01_고유한 몸, 고유한 언어_작업 기록

6 1, 희범, 소담, 민경  명이 A 학교에서 감각통합  움직임 수업을 하는 첫날이었다.

A 학교 수업은 지난해에 이어 2년째이지만, 1학년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과  명의 동료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약간 긴장되었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선생님께서 우리가 하는 것을 잘 이해해 주실까, 계획했던 것들을 잘할 수 있을까, 순간순간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수업을 잘 이끌 수 있을까...?'


우리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감각통합실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도착했다. 수와 윤, 율 세 명의 1학년 어린이다. 선생님은 각 아이들의 특징을 설명해 주셨다. 설명을 들은 후 강사와 어린이가 1:1 파트너가 되어 몸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첫 수업의 주제는 '만남'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몸과 몸의 만남은 어떤 것일까?


수업을 준비한 우리에게도 아직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사실 이 수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지난 몇 달간 이런 질문들에 성급히 답을 내리고 스스로 그 답에 갇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우리의 관념과 제한된 경험에 기반해서 아이들에 대한 이런저런 판단을 내리는 것이 현장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모호하지만 이 모호함을 안은채 아이들을 만나기로 했다. 만나는 과정에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같이 보면서,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나는 수를, 민경과 소담은 각각 윤과 율을 만났다.


내가 수를 처음 보러 갔을 때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져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뭔가 낯설고 무서웠던 것일까? 나는 누워있는 수와 약간 거리를 두고 앞에 누워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수는 울먹하던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무언가 궁금해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천천히 수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갔다.


-리듬

 아이를 첫날 발견한 비교적 명확한 리듬은 호흡이었다. 그런데 수의 호흡 리듬에 온전히 주목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수가 숨을 쉴 때마다 그르릉 그르릉 가래 끓는 소리가 나의 주의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소리 자체가 거슬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아이를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리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자세와 움직임

수는 자의적으로 몸의 자세를 바꾸거나 위치를 이동하는 움직임을 하기 어렵다. 담임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누운 아이는 머리가 계속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왼쪽 팔과 손목을 안으로 굽혀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수의 고개는 왜 한 방향으로 계속 돌아가는 것일까? 단순한 회전만은 아니고 회전과 동시에 고개를 뒤로 젖히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이것은 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수의 머리 움직임은 영아기에 누워있는 아기가 몸을 뒤집어 엎드리는 과정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아기들의 경우 시선과 머리가 먼저 관심 대상을 따라 돌면 척추와 몸통이 자연스레 머리의 움직임을 따라 회전하며 몸이 뒤집어진다. 수의 머리 움직임이 아기들의 뒤집기와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수를 뒤집어 엎드리게 하면 어떨까 싶었다. 선생님께 여쭤보니 아이를 엎드려 있게 한 적은 없다고 하셨다. 몸을 뒤집어주자 수는 평소 머리를 오른쪽으로만 돌리는 것과 달리 왼쪽으로 돌려 내려놓았다. 곧 가래 끓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등을 대고 누운 상태에서는 매우 제한되어 있던 흉곽 움직임이 커졌다. 엎드려 놓으니 수가 숨을 쉴 때 흉곽만큼이나 골반도 많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이가 꽉 쥐고 있던 손아귀와 팔꿈치에 힘을 조금씩 빼는 게 보였다. 나는 조금 더 힘을 뺄 수 있도록 팔과 손의 무게를 받치고 기다렸다. 그러다 이내 기다리지 못하고 슬며시 아이의 손을 내 힘으로 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수가 다시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내가 성급하게 나섰던 모양이다.

조금 후 수가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굴곡하며 안으로 꽉 쥐던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움직임이었다. 부드러운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꾹 누르거나 잡는 듯한 움직임. 왜 움직이는지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냥 보고 흘려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의미를 밝히고 해석하려는 강한 추동이 내 안에서 느껴졌다.

아이가 몸의 불편감이 큰 자세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움직임도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반사적인 근 긴장에 풀릴 만큼 편안한 몸 상태가 되면 자연스럽게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물리적인 불편감과 자세에서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아이가 조금이나마 편안해 할 수 있는 자세를 먼저 찾아주는 것이 급선무일 수 있다. 아이들의 신체가 보내는 사인들이 불편감과 관련된 것으로 많이 느껴지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데 있는 것은 아닐까?


-형태

수는 1학년이지만 나이는 10살이다. 하지만 몸집으로만 보면 3~4살로 보일 정도로 작고 말랐다. 뼈가 가늘고 아주 가볍다. 발도 아기처럼 작다. 피부는 너무 하얘서 핏줄이 다 비칠 정도다. 이렇게 유아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눈빛만은 유아처럼 보이지 않았다. 깊고 또렷한 눈빛에 무언가 많은 것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수의 흉곽은 무언가에 눌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복부에 비해서 부피가 작고 척추와 함께 한쪽으로 약간 휘어진 형태였다. 복부는 그에 비해 볼록하고 길이가 위아래로 길었다. 흉곽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에서 횡격막 움직임에만 의존하다 보니 복부가 많이 늘어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보니 늑간근 등 보조 호흡근이 거의 발달하지 않아 흉곽 움직임은 점점 둔화되고 갈비뼈도 같이 성장이 둔화된 것 같다.

골반도 굉장히 작은데, 폭으로 치면 복부보다 더 둘레가 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리는 팔과 비슷하게 보일만큼 얇고 근육이 위축되어 있었다. 무게를 지지하는 중력 자극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 조금씩 움직이는 팔과 손에 비해 발과 다리는 훨씬 더 무기력하게 움직임이 없었는데, 이로 인해 근육 발달이 거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움직임을 하지 않아서 근육 발달이 안 되는 것이 먼저일까, 근육 발달이 되지 않아서 움직임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닭과 달걀 이야기 같은 이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소리와 진동

수는 발성 기관을 이용해서 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던 것 같다. 소리를 냈는데 내가 못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호흡을 할 때마다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몸이 진동했다. 가끔씩 기침도 했다. 내가 안고 있을 때 기침을 했는데 아이의 몸 전체가 흔들렸다. 뼈가 약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약한 뼈가 행여 기침에 부러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을 아이의 근육과 인대들이 떠올랐다. 근육에 힘은 없지만 그렇다고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속도

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천히 깜빡였다. 눈 깜빡할 사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이었다. 힘을 주는 것도, 힘을 푸는 것도 서서히 이루어졌다. 웃음도 빠르게 솟구치지 않았다. 꽃이 피는 듯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여러 차례 보았던 것 같다.

이 아이에게 나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매우, 너무 빠르게 느껴질 것 같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떠나는 속도, 말을 할 때 단어와 단어가 이어지는 속도, 음절과 음절이 지나가는 속도, 사람들의 손길이 수의 몸을 스치고 만지고, 들고, 굽히고, 펼치고, 모으고, 뒤집는 속도... 다음에 수를 만나면 나도 조금 더 수의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 보고 싶다.


-패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반사적인 움직임의 패턴... 패턴은 반복하여 나타나는 어떤 형태를 이야기한다.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들은 특정한 반사적 움직임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 역시 위에 적은 것처럼 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팔이 안으로 말리는 긴장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날 수를 만나고, 또 윤과 다른 학년의 준을 만나면서 반사적 움직임 패턴이 무엇일까 생각에 빠졌다. '반사'는 그 사람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자동적 반응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수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과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아이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일일까?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나의 직관적인 생각과 느낌은 이런 움직임을 '반사적' '무의식적' 동작 혹은 근긴장으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내 안에 어떤 감각과 느낌과 생각들이 있길래 이런 직관이 작동하는지 조금 들여다봐야겠다.


아이가 수의적으로 힘을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얼마나 명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영아기 아이들에게 눈이 돌아가고 머리가 돌아가는 움직임은 수의적인 것일까?

그 나이의 아기들에게 수의적, 의지적, 의도적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자동적으로' 발현되는 욕구에 의해 일어나는 동작은 수의적 움직임이라 할 수 있을까?

반사적인 몸의 긴장이나 반응이 발달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추동에 의해 일어나는 움직임이 몸의 특정 부위에서 제한되면서 움직임이 흘러가지 못해 고여있는 상태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날 만났던 수와 윤은 스스로 몸을 뒤집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과 머리는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돌아갔다. 영아기 아이들은 눈과 머리가 돌아가고 그에 따라 척추가 회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뒤집기를 배운다. 하지만 만약 이 단계에서 머리와 눈의 움직임을 몸이 쫓아가지 못한다면 어떨까? 목과 머리는 한 방향으로 계속 가려고 하고 몸은 계속 따라가 주지 못한다면, 그쪽으로 긴장이 쌓이면서 그 방향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것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가 자연적인 것, 의도적인 것, 의지적인 것, 반사적인 것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함을 발견한다. 물론 물건을 집어 들거나, 급할 때 뛰는 등 어느 정도 더 인지적 의도에 따른 움직임도 있고, 내장 기관의 움직임이나 무릎 반사 움직임처럼 훨씬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기작에 의해 일어나는 반응들도 있다. 그러나 그 경계가 모호한 영역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성장과 배움은 대부분 이런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완전히 자동화된 범위도 아니고, 완전히 계산되고 계획된 대로도 아닌, 그 사이의 경계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들며, 새로운 움직임이 발생하고 그것을 나의 몸과 의식이 알아차리고 그에 맞춰 세포 수준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며 배움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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