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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Apr 20. 2023

호랑이 항아리 만나러 가볼까?

리움 미술관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전시장 가기 딱 좋은 날씨다.

 미술사 강의하던 시절에 가고, 거의 10년 만인 것 같다.

 반갑다, 리움미술관.

(리움미술관은 무료이지만 100% 사전예약이라 방문하려면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2주 전 예약이 거의 필수이며, 조기 마감되니 참고하시라.)


 군자지향이라.

 첫눈에도 유교사상이 진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에 유독 백자가 유행했던 이유는 유교와 관련이 깊다. 이를 지지하는 사대부들의 사고방식이 백자에서 보이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와 상통하는데, 백의(白衣) 민족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전공자 입장에서 본다면, 도자기 발전 과정 중 청자에서 백자로 자연스럽게 태토(台討)와 유약의 발달로 볼 수 있다.

 14세기 중국 원나라를 기점으로 백자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데, 순도 높은 고령토가 백자를 발달시키게 된 핵심 재료이며, 이전에 상감으로 표현되었던 무늬들은 청화(푸른색), 철화(붉은색), 동화(녹색) 방식으로 전환되는데, 3G에서 5G로 바뀐 거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어두운 조명 아래, 마치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방에서 쏟아내는 강렬한 조명이 전시장에 오롯이 나 혼자 감상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좌: 청화백자  우: 철화백자

 백자는 참으로 어려운 장르이다.

 청자보다 높은 고온(1300도)에서 소성이 이루어지다 보니, 무늬를 살리려면, 본체의 유약이 흐릿해지고, 본체를 살리다 보면 무늬가 녹아내리기 십상이다.

 

 가마문을 연 도공은 한순간에 가슴이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말리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곱게 그린 송죽이 불 속에서 사그라져 버렸다.

 반면, 이렇게 과감한 도공도 있다.

 붉은 구름 속에 갇힌 용이 뭉크의 절규만큼 표현주의적이다.

좌: 백자양각 십장문 화형 잔, 개인소장  우: 철화백자 호록문 호,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

 나도 처음 보는 작품이었다. 백자는 고강도 재질이어서 아주 얇은 두께로도 제작이 가능한데, 왼쪽 작품은 그 특징을 십분 발휘했다. 선조들의 기술력에 감탄하고, 개인 소장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반가운 호랑이 항아리를 만났다. 내가 궁금해하는 그 항아리는 아니지만, 친구 호랑이에게 충분히 소식을 전해줄 수 있으리라.


'군자는 곤궁함 속에서도 굳세지만, 소인은 궁하면 멋대로 군다'    - 논어 위령공편

설명을 덧붙이면, 16-17세기 조선은 일본과 중국과의 전란으로 청화안료의 수급이 불안정해지는데, 철 안료가 대체재로 떠오르게 된다. 오히려, 붉은색이 주는 강렬함과 독특한 미의 세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한 점을 군자에 빗대어 해석한 것이다.

 참으로 다정한 아버지이다. 어린 딸의 서툰 꽃그림이지만, 무한한 영감을 느끼게 한다.


 전시의 마지막, 홀로 우뚝 선 대호가 의외라고 같이 간 후배가 말했다.

 나는 왠지 모를 갈등이 느껴진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마주 보며, 잠깐 웃었다.

 

 순백의 항아리는 아주 매력적이다.

 푸른 무늬를 넣고 싶게 만들다가, 금세 생각을 바뀌게도 만든다.

 푸르거나 붉거나, 혹은 아무 무늬가 없거나. 더러는 둥근달로 마무리 하고 싶지만,

 언제나 내 마음 이끄는 대로,

 그것이 바로 군자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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