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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Jun 29. 2023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나는 국민대를 나왔다.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뎐 1993년,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대학수학능력평가'라는 새로운 형식의 입시를 예고했고, 참고할 문제집 하나 없이 수능을 치렀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 혼란스러웠는지는 내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느라 수업시간 외에 따로 교과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내신이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물론 강원도 저 지방의 여고지만 나름 비평준화 시절이라,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 난 브레인에 속하게 되었다. 다들 잊고 있겠지만, 난 차석이었다구~

오, 나의 그리스부인이여~

국민대는 전국구였다.

일반적으로 미대입시를 치르려면, 뎃생과 구성,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뎃생 한 가지만을 치르지만, 출제범위가 중형과 대형급이었다.


뎃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형태감을 가장 기본으로 하는 장르이다.

전국 팔도에서 4B연필 하나 들고 청춘의 꿈을 이루고자 상경한 우리들이었다.

내가 기본기만 있으면, 충분히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 기본기를 위해 손에 연필 인이 배길 정도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좌: 국민대 조형실기대회 은상 수상작 2021,  우: 삼육대학교 전국고교생 실기대회

어떤 일을 하던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 '성실'이라고 믿는다.

전 국가대표 선수 장미란은 규칙적인 생활과 하나하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자신에게 잘 맞았고, 타고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역도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 도예가들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흙 한번 손에 묻히지도 않고 도예과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여전히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걸까?


가까운 후배 한 명이 있다. 작업실을 운영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월~토요일까지 일을 하며, 직원 1명, 아르바이트생 2명을 채용하고 있다.

다달이 내야 하는 월세가 부담스럽지만, 또래 회사원만큼은 번다고 했다.

사실 경제적인 규모를 보면 적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익을 내기 위해서 수강생을 관리하고, 제품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데, 아마 개인 작업을 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체력적으로 힘들고, 남들 눈에는 고상한 도예가의 일상으로 비치지만, 실상 우리의 삶은 꽤 전투적이다.

성북동 작업실 '오소소'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적당한 흙을 다루어 형태를 만들고, 잘 건조시킨 다음 천천히 가마에 굽는다.

도자기 공정과정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으니, 우리는 기다리고 생각하고 또 기다리고 정리한다.


건조대를 가득 채운 작업도구에서 후배의 고단한 삶이 엿보이지만, 텅 빈 물레를 보니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넓은 작업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가끔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자기 공정과정이 바뀌지 않음에 답답함을 느낀 적도 있지만, 십 수년이 흐른 뒤, 오히려 그 과정이 내 몸에 밴 습관이 되었다.

무엇에든 기다리고 생각하고 또 기다리고 정리한다.


우리는 일련의 이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날마다 흙에 대한 애정을 더해가고 있다.

초벌기일 때는 수채화같지만, 재벌을 마치면 좀더 진한 분위기가 있다.

'자신의 길을 의심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노력하며 버텨온 자는, 언젠가 큰 결실을 맺으리라'


오늘 아침 장미란 교수가 문체부 2차관으로 발탁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

지리한 장마가 시작된 여름이지만, 나 역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혹시 또 알아? 말년에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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