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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May 26. 2023

잔떨림을 그릇에 덜다

<Green Design> 윤호섭 교수

다음 중 '제세동기'가 뜻하는 것은?

➀ 군대 제대 동기  ➁ 세상을 구제하는 사람들  

➂ 심장충격기


 정답은 다들 아시리라~

 제세동기(除細動器) -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기계를 말함.

 여기서 세동(細動)은 '잔떨림'을 의미하고, 의학적으로는 심장의 전기전도 체계에 문제가 생겨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현상을 말함.

                                        출처 :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내가 아는 그 의미가 아니고 정답이 따로 있는지 의구심이 들어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나는 아직 상식의 범위 안에서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반가운 글자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한자를 들여다봤다.

제(際덜다), 세(細가는), 동(動움직임), 기(器그릇)

'가는 움직임을 그릇에 덜다.'

아름답다.

심장의 불규칙한 움직임은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지만, 그 불규칙함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릇에 덜어낸단다.

감동적이다.

나는 어떤 그릇이 되어야 할까,

뭐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우리 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는 윤호섭 교수님이 계셨다. 1990년대부터 '환경과 디자인'을 주제로

'Green Design'을 최초로 실행,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신다.


'세상에 쓸데없이 버려지는 많은 것들'

그것들에 대한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으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물이 반쯤 담긴 컵,  둥둥 떠다니는 우표 한 장, 그 위를 노니는 새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긴 했다.

전하려는 메시지도, 무겁지 않은 표현도, 

좋았다.

출처: 헬로우 뮤지엄

어느 날,

조형대 로비 유리 창문에 여러 장의 신문지가 붙여져 있었. 그것은 마치 빛을 가리기 위한 단순한 용도로 보이기도, 누군가의 낙서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의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Green Design을 이해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미화를 담당하는 여사님에게서 발생했다.

창문을 가리던 신문지는 한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끔히 지워진 유리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용을 알지 못하는 여사님은 무척이나 난감해하셨지만, 교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우리가 환경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슥슥 붓으로 글씨를 쓰시고 그림을 그리시더니,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처음 모습으로 돌아갔다.

everyday eARTh day,  표현이 참 좋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성인은 되었으려나.

큰 획은 긋지 못하더라도, 한 점 정도는 찍고 싶은데,

나의 <이 분 도 자 사>가

누군가의 제세동기(器) 되기를 오늘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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