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A Jan 25. 2024

가나다라마바사아

"기차 책 어디 두었어?"

"......"

"지난번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 말이야."

"......"

"그건 가져와서 반납해야 하는 거야."

"......"

"무슨 말인지 알겠어?"

"모르겠어."


이 녀석은 도통 속을 모르겠다.

내가 손짓발짓 해가며 설명을 해도,

마지막엔 방긋 웃으며 모르쇠다.

oh, 김대한민국. 너 이럴 셈이야!


이름 : 김대한민국

특징 : 눈이 크고 해맑음. 밝은 성격, 쑥스러움도 탐. 하지만 낯가림이 사라지면 엄청 까붐.


작년에 내가 담당한 1학년 학생으로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다문화 가정 아이이다.

아버지는 연로하시다. 애국심 강한 이름에서 올드함이 묻어나는 걸 보면.

하지만, 입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아이가 한국어를 전혀 못!!!


최근 1학년 교과과정은 한글을 떼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가나다라부터 수업이 시작된다.

교육열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는 엄마들이 아이와 한글공부를 하는데,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생초짜 상태로 입학하기도 한다.

한글을 모르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니......


엄마가 베트남 여성인 것은 알겠다.

아빠는 바깥일을 하시느라,

아이를 아기처럼 예뻐만 하신다고 하더라.

은근 엄마가 굉장히 엄격하단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학교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 바짝 마르고 예민한 성격이라는 외에 정보가 없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TV만 주구장창 봤다더라.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할 때 쉽게 접근하는 것이 미디어 시청인데, 이 아이는 특이하게 그 부분도 작용되지 않았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1. 아이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난시이거나 사시인 것 같다. 수업시간에 화면을 바라보는 자세가 대각선으로 비뚤어지고, 눈앞이 뿌연지 연신 눈을 비벼댄다.

동영상을 시청할 때는 소리가 크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니까, 시각과 청각에 약간의 오류가 언어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2. 언어 상호작용의 경험이 적다

우연히 신문에서 다문화 가정의 한국어 습득이 어려운 점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은 이주여성 어머니의 경제활동을 위해 한국어를 습득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굳이 학습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어 습득으로 인해, 오히려 가출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란다.

이 아이의 가정환경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고. 아이가 베트남어도,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자신만의 고유어(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단어. 몰라요. 주세요. 아니에요)만 사용하는 걸 보면, 상호작용이 뭐예요?라고 질문을 당할 수도 있겠다.


3. 언어발성의 차이가 난다.

중국어에 성조가 있다면, 한국어에는 된소리, 거센소리가 있다. 특히 입술을 모으거나 벌리거나 혹은 조여서 다양한 방식으로 발음을 한다.

 베트남 권은 모국어 자체가 응, 우, 옌 등과 같이 동그랗게 벌려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로 인해, 입술을 모으거나 조이는 구강구조가 선천적으로 약할 수 있다. 게다가 앞니를 두 대나 빼고 안 그래도 발음이 새는 아이가 입술을 모아서 발음하려니,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나는 한 학기 동안 아이 앞에서 최선을 다해 정석으로 발음하고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기만 한다.

과제 주제를 보고, 살짝^^ 후회되기는 했다

이런 궁금증이 동기가 되었을까?

나는 한국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 말이다.

단순히 재밌을 것 같아서.


가만히 보면,

가마를 짓고, 흙을 빚고, 그릇을 만들어내는 내 성격은

가끔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남편이 대학원을 보내 줄 때만 해도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가방끈이 두꺼워진다.

아동학을 공부할 때만 해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언어학 공부라.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몇 년 동안 공부 안 할 거다.

진짜다.


나에게는 병이 하나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이요.

2024년도 열공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Good bye, Rabbi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