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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Nov 04. 2019

상담이 하고 싶, 어요?

상담자의 진로 고민

스물여섯. 고등학생 혹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만 하더라도 스물여섯은 내게 멀게만 느껴지던 나이였다. 스물여섯은 어른이었고, 그즈음이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을까 막연히 기대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스물여섯이 된 나는 공공기관의 상담자로서 근무하고 있다. 누군가는 너도 무언가를 이뤘네, 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공공기관의 상담자라 소개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지나온 길은 나름 멀고 험했다. 학부 때 멋 모르고 배운 전공에 반한 이후로 상담자만을 목표로 달려왔다. 상담계의 학력과 자격 인플레이션에 발맞추기 위해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학사에서 석사까지 휴학 없이, 그 어떤 한눈도 팔지 않고 쉼 없이 뛰어왔다. 


하지만 학위는 이 바닥에서 정말 최소 요건이었던 까닭에 학위만 가지고서는 나를 상담자라 소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러 봉사활동, 인턴, 파트타임 등의 경력을 쌓고, 부수적인 국가 자격증 몇 개를 따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대표적인 학회 자격증 하나를 취득하고 나서야 상담 관련 직무에 이력서를 넣는데 서류 탈락의 고배를 마시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가 날 온전한 전문가로서, 상담자로서 생각하냐면 그건 완전 다른 문제였다.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이력서 한 줄은 추가됐고, 서류에서 걸러지는 일은 줄었지만 자격증이 상담자로서 나의 자존감과 실력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괴로움 속에서 공들여 딴 자격증은 정말 아무것도 담보해주지 않았다. 


자격증을 따기 전의 나나 취득한 뒤의 나는 여전히 상담을 고민했고, 내가 상담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자괴감과 고통을 느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고민하며 사는 길이 상담자구나. 나를 전문가로서, 상담자로서 정의할 수 있는 건 자격증 한 줄이 아니라 나 자신이겠구나 하는 얄팍한 깨달음 속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현장에서 상담의 길을 계속 걷겠노라 결심했을 때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노력의 순간과 고통들을 엿보았다. 


그제야 상담의 길이 쉽지 않노라 말씀하셨던 교수님들과 슈퍼바이저 선생님들, 그리고 선배들의 말이 생각났다. 문제는 그런 고통을 이겨냈을 때 나에게 어떤 성장과 보상이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상담은 보람 있는 일임은 틀림없다. 내담자가 오래 품고 있던 어려움을 함께 듣고 명료화해 나갈 때, 무엇을 위해,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함께 고민할 때, 그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고통을 함께 머무를 때, 내가 마치 그가 된 듯 그의 감정들을 느낄 때, 그의 반 걸음 뒤에서 그가 나아가는 방향을 지켜보며, 그의 변화를 발견하며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울 때. 그 모든 순간들은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불가해하고도 내밀한 순간순간이 모여 만들어지는 상담과 그 학문에 반해서 여기까지 현실적인 제반 요건 같은 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상담자가 빈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어도 석사를 마치고 관련 직무에 입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눈에는 그래 보였다. 석사 학위, 자격증 그리고 기관 경력까지 요구하는 자리가 태반이지만 이러한 자리들의 대부분은 월급이 180~200 선을 웃돈다(심지어 세전이다). 심지어 대부분 상담 직군의 일자리들은 계약직이기까지 하다. 최근 상담 관련 직무 대부분의 일자리 공고가 업로드되는 모 학회 게시판에 게시된 어떤 대학의 상담자 선발 공고는 세전 월급 180에 1년 계약을 조건이라고 내걸었다. 일자리의 수도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 시대에 비하면 늘어난 거라고 하지만 일반 취업 시장보다는 한 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1급을 취득해서 슈퍼바이저가 되면 어떨까? 우선 1급 슈퍼바이저를 따기 위해서는 최소한 3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해당 기간은 요구되는 수련 요건들을 채우기 위한 기간으로서 정말 최소로 산정했을 때 그러하다. 더군다나 최근 학회의 자격증 발급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추세이고 특히 1급은 말할 것도 없다. 1급에 박사까지 마친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센터에서 근무하는 1급 슈퍼바이저의 경우 보편적으로 경력에 따라 250~3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1급이 대부분이 계약직에 학위, 자격증, 경력을 쌓고 쌓고 또 쌓고 이직을 하더라도 연봉 협상은 꿈같은 단어인 셈이다. 


누군가는 현실 감각 없고, 뒤늦은 깨달음이라고 할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200도 되지 않는 급여가 통장에 찍히고 나서야 자문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내적인 보람과 성취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내년 이맘때 호봉이 오른다고 했다. 오른 호봉을 월급으로 다시 산정해보면 만원이 오르는 셈이다. 여전히 200을 넘지 못한다. 내적인 보람과 성취가 이 길을 가는데 예고되는, 낮은 급여와 처우를 포함한 수많은 어려움과 노력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가? 나는 내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가능할지 아닌지, 다시 한번 가늠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니 어쩌면 정말 뒤늦고, 누군가는 바보 같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너 그래서, 

상담자로 살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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