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깔마녀 Aug 29. 2023

지난여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일임에도

송년음악회와 해맞이는 연례행사였으나, 시대가 달라지는 바람에 더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 해맞이를 한 뒤, 호텔 조식 뷔페에서 1년을 시작하며 가족 모임을 한지 거의 1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되었다.  섭섭하기보다는.... 그게 또... 편하다!


무엇보다도 2023년 초에는 아주 멋진 공연실황을 볼 수 있었기에 대만족. 바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명동성당 연주를 TV에서 실황으로 생중계해주는 데, 가만히 누워서 전 곡을 모두 감상했다. 물론 멋진 명동성당에서 직접 들으면 그 감동이 남다르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온라인으로 들어도 아직도 그 여운이 가라앉질 않는데, 괜히 공연장에 찾아갈까. 게다가 앙코르 곡으로 리스트라니? 이거 가능한가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한국인은 임윤찬뿐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를 들으면, 빨려 들어가듯 온전히 음악에만 집중하게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해 건반을 두들기는 모습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그가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마치 작곡가가 살아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내가 베토벤의 연주를 들었을 리가 없지.


전반부의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조성진이나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 소식을 들어도 이젠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 나의 손가락은 늘 늦었으니까. 조성진 이번에 어디 온다.. 그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미 매진이다. 전석매진. 그리고 절대로 취소 티켓은 없다. 찾아볼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유튜브나 찾아 듣는 게 쉽지. 하지만 이번에 나는 적극적으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찾아보았다. 날짜를 기억하고 알림 설정을 해 두었다.


그리고 지난 6월... 분명 알림을 해 두었는데, 티켓 판매가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버렸다! 롯데 콘서트 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이미 전석매진이었다.


아무리 다시 눌러봐도 좌석은 없다. 다른 예매사이트도 마찬가지. 아... 오픈 당일에 들어가도 살 수 있을까 말까 하는 표를, 나는 어찌하여 며칠이나 늦었을까. 누굴 탓하랴. 부산국제 영화제 개막작도 덕수궁 음악회 같은 곳도 그랬다. 1분 늦어도 이미 매진. 1분이 뭐냐, 들어갈 수도 없다.  IT강국이지만 그게 뭐.


그리고 1주일 뒤,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6월 28일 공연, 취소티켓 있나요? 전화를 받은 상담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마침 딱 1 좌석 취소한 게 있는데, 28만 원 좌석이에요. 잠깐 생각했다. 다시 전화드릴게요.


왜! 나는 재고했을까? 분명 내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인데! 28만 원이라도 갔어야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28만 원보다 훨씬 더 큰돈을 썼으니까... 저 아래 사진 속에 있는 것들은 더 큰 금액이다. 옷은 몇 번 입으면 낡고 변색된다. 그리고 때가 묻고 닳는다. 처음과 같을 수가 없다.


그러나 연주를 직접 들었다면, 내 평생 기억 속에 퇴색되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도 몇십 년이 지나도 그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을 거라 확신한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변명 같지만, 그때는 영화관도 기차도 타기 불편한 몸이라 걱정이 앞섰던 것도 있다. 거의 두 달 동안 통근치료를 받았으니, 공연장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이 난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다음번 공연 때 표를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그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 또 언제 공연을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도 없다. 누굴 원망할 수도 없구나. 사 둔 옷은 아직 택도 제거하지 않았으니 입은 적도 없다는 말인데...



라디오에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듣게 된다. 10분이든 20분이든.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한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계속 남더니 바로, 놓친 공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뭔가 필요하고 (지갑을 열고) 또 부족하게 느껴지고( 카드를 긁고) 막 생각이 뒤섞이고... 아… 핑계 댈 구실을 찾는다. 주범은 … 바로 더위다. 올여름은 너무 더웠으니까. 이번 여름은... 그래, 그래… 알아… 설명 안 해도 괜찮아.



생일선물, "내가 나에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마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