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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곳 Nov 28. 2019

나의 초보 운전 연수기

20시간으로 얻은 값진 경험

장롱면허 차주 때문에 주차장에서 약 한 달간 푹 쉬게 됐던 나의 자동차, 숙성이

도대체 왜 나는 차가 있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이 든 어느 겨울날 나는 용기를 내어 운전연수 학원을 찾아냈다. 

엄청나게 많은 연수 학원 중에 추천을 받아 두 곳을 추려냈고 각 학원에서 10시간씩 수강 신청을 했다.      


사실 나는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약 3년 전 운전학원에서 학원차로 6시간, 아빠와 아빠 차로 2시간 연수를 받았는데 

그때 아빠와 자유로를 달리며 연은 끊을 직전까지 심하게 싸워댔고 예민해진 감정을 따라 덩달아 예민해진 방광 때문에 급 임진각에 들려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정확한 주어를 말하지 않고 “이거! 저거! 이쪽! 저쪽!” 만 외치며 나를 마냥 답답해하던 아빠의 말에 나는 겁보다 짜증이 더 많아졌고 결국 집 근처에서 아빠에게 핸들을 빼앗겨 버렸다. 

그리고는 둘 다 씩씩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선선한 봄날 땀으로 샤워라도 한 듯 젖어있는 아빠 등을 보고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어 사과와 감사의 말을 건넸지만 아빠는 그 이후로 나에게 차를 몰 기회를 절대 주지 않았다.

추가로 운전 학원 강사님은 제법 만족스러웠으나 어느 날 지갑을 놓고 왔다고 자신의 집으로 운전 코스를 설정하는 대범함을 보였었다...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무조건 여자 강사님을 붙여 달라 간곡히 요청을 했지만 

결국 우리 집에 온 강사님은 모두 남자분이었다.

꼭 여자 선생님이 아니어도 됐지만 되도록 친절하고 내 입장에서 알려줄 강사님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번의 운전 연수, 두 명의 강사님. 그렇게 숙성이와 나의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나는 완전 초보 상태에서 운전 연수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무조건 20시간 넘게 연수를 받을 것! 절대 한 사람에게 운전 연수를 받지 말 것! 첫 번째 강사님 때문이었다.     


그는 캐주얼한 의상에 스냅백, 귀걸이를 장착한 제법 젊어 보이는 남자 강사님이었는데

회사 출퇴근을 하고 싶다는 나의 요청을 받아들인 뒤로 5일 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그저 회사 가는 길만 알려주고 떠났다. 정말 회사로 가는 가장 쉬운 길만 알려준 것이다. 심지어 백미러도 그가 보기 편한 위치로 맞춰놓고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휴대폰을 만지거나 다른 일정을 조율하는 여유로움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모든 연수가 다 이런 것인가 회의감은 느끼며 더 초조하고 두려워질 뿐이었다. 3일째 되던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야간 운전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 저녁에 만나 또 같은 길을 말없이 오고 가고 수업을 마쳤다. 차에 타 있는 2시간 동안 나 혼자 있는 거 같은 느낌까지 들게 했다. 

‘이럴 거면 화를 내도 좋으니 아빠랑 할 걸...’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네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쉬운 길을 알려준 것은 고마웠지만 그것뿐이었다.      


5일을 주구장창 다니던 그 출근길 


첫 번째 10시간의 연수가 끝나고 나는 다른 학원에서 수강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나이가 많은 남자 강사님이었고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웬걸? 이번 강사님은 2시간 동안 깨알 운전 팁을 알려주며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매일 질문을 던졌다. 

덕분에 나는 마트에서 후방 주차를, 연희동에서 평행 주차를 배웠고 회사는 물론 옆동네 마트, 홍대, 시청, 신도림, 이태원, 남산 등 서울 곳곳을 누비며 운전을 배웠다. 

남산 인근을 지나면 차량 내비게이션에 케이블카 그림이 나오는 놀라운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또한 운전을 하면서 주차 수정 방법이나 이론을 한번 설명하고 이후 내 휴대폰으로 녹음할 수 있게 한 번 더 설명하는 친절함까지 보여주다. 게다가 내 차에 있는 새 물을 자기 것처럼 마시던 첫 번째 강사님과 달리 중간에 편의점에 들려 내 음료까지 사 오는 센스까지 갖춘 분이었다.

강사님 평가지가 있었다면 10점 만점에 100번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20시간의 연수를 통해 나는 이제 출퇴근과 마트, 공업소 정도는 다닐 수 있는 초보운전자가 되었다. 물론 그때 배운 평행 주차는 단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고 이태원, 시청을 다시 찾은 적도 없지만 아주 조금씩 천천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연수를 통해 말하지 않으면 성장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강사님이 나에게 꾸준히 질문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이야기했기에 이 정도 발전이 있었던 거처럼. 그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겪어봐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연수비를 내고 운전과 함께 인생을 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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