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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곳 Sep 05. 2019

충동 버튼

고민이 많으면 가끔 고장 날 때가 있다

 

나는 옷 한 벌을 살 때도 3만 원이 넘어가면 몇 달을 고민하고

1만 원짜리 식품을 살지 말지 결정을 못해

한동안 장바구니에만 묵혀놓기도 하고  

심지어 값비싼 물건이 사고 싶으면 꿈에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말을 할 때도 비슷하다.

업무 전화를 할 때는 미리 대본을 작성하는 것은 기본

상대방 반응의 대해 경우의 수까지 생각하며 가상의 시놉을 짜기도 하고

친구나 누군가를 만나 대화할 때도 어떤 이야기를 할지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민의 준비의 연속인 내 삶에

가끔 충동 버튼이 눌릴 때가 있다.     

이 버튼은 거의 1년에 한두 번 정도 작동하는데

주로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았던 것들이 행해지는

일종의 일탈이자 도박 같은 버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버튼은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생겼던 거 같다.

졸업식 날 자장면을 먹다 갑자기 이미 넣은 대학 등록금을 빼서

추가 합격된 학교에 입금하기도 하고

잘 다니던 대학에 덜컥 휴학계를 내고 1년을 쉬기도 했다.

물론 특별한 계기나 사건도 없었다.

이유는 그냥이었고 모두 갑자기였다.

단지 그 시기에, 그 순간에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았다.

 

이후 2016년에는 호주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스카이다이빙 예약을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15000ft, 4천500미터 상공에 있었고

같이 간 친구 말에 의하면 ‘짐짝 떨어지듯’ 굴러 떨어져 하늘을 날기도 했다.

지금 나에게는 구겨진 수료증과 판도라 상자와 같은 영상만 남았다.      

2017년에는 열심히 번 돈을 족족 해외여행에 쏟았다.

베트남을 6번이나 다녀와 주변 사람들에게 투기 의혹을 사기도 하고

베트남 사람과의 결혼설이 돌기도 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충동 버튼이 또 한 번 작동되는데

이번에는 바로 문신이었다.

이때는 조금의 고민 과정이 있었으나

문신을 할지 말지가 아닌 코끼리가 좋을까? 고래가 좋을까? 였다.

그리고 특별한 고민이나 걱정도 없이

발목에 대왕고래를 뚝딱 새기고 출근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후회는 없고 나의 대왕 고래는 여전히 귀엽다.      


2018년의 나는 무엇을 했던가...

회사가 너무 멀다는 이유로 갑자기 차를 보러 다닌다.

모아놓은 돈도 없어 영혼까지 끌어 모은 쌈짓돈으로

밤에는 중고차 어플을 보고 낮에는 중고차 매장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차를 사자 결심한 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지금의 숙성이를 갖게 됐다.

장롱면허에 차폭감도 없어 한 달을 주차장에 푹 묵혀있던 숙성이는

이곳저곳이 멍들고 까지고 깨져서 집과 회사만을 오간다.

      

그리고 대망의 2019년, 엄마의 말 한마디에 개명을 했다.

30년을 넘게 불리던 이름을 일주일 만에 바꿔버렸다.

이번에는 내 의지가 크지 않았지만

아마도 충동 버튼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이름이 좋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테니-

     

살면서 스카이다이빙, 문신, 자차 구매, 개명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쩌면 고민과 생각 많은 내 삶의 사이클이 고장 난 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장은 내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충동적으로 해치우면서

일 년이 즐거워지고 내년이 기대된다.      

언제 어디서 충동 버튼이 작동될지 전혀 모르지만

그때에도 나는 고민 없이 무엇이든 뚝딱 해치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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