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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곳 Sep 23. 2019

반려동물 키우고 싶으세요?

극사실주의, 늙은 개 케어 일기

반려동물 천만 시대! 조만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인구총조사에 포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 입양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단순히 예쁜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 살고 계신 작고 늙은 어르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집 으르신 16살, 개마루  


이제 16살이 된 마루

태어난 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 집에 온 녀석은

예쁨을 받으며 제법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우린 함께 여행도 다니고 부지런히는 아니지만 산책도 다니고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며 가족이 되었다.

마루는 우리 집에 기쁨이자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복덩이에서 온갖 병을 겪는 돈덩이가 되었다.      

매일 먹는 사료 값에 1년에 4~5개씩 맞아야 하는 종합예방접종은 기본

방광에 결석이 생겨 두 번에 걸쳐 수술을 했고

이때 치료비와 입원비가 만만치 않았다.

건강을 되찾은 이후에는 허리 디스크에 걸려

밤새 녀석을 쫓아다니며 간병을 해야 했고

나이가 들어 온몸에 생기 혹이 커져 절개 수술도 받았다.

그밖에 자잘한 증상으로 응급실에 간 적도 허다했고 작년에는 심장병에 걸려 평생 약을 먹는 신세가 되었다.

심장에 물이 차 고비를 넘긴 적도 여러 번,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해 심장 사이즈를 재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받고 있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검사 결과가 비슷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자기 임파선에 종양이 생겨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나이가 있어 몸이 견디지 못할 거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우리는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대체 약물로 치료를 이어나가고 있다.

5kg도 안 되는 작은 녀석이 겪기엔 너무 많은 아픔일 텐데 기특하게 마루는 약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쉽게 미용도 맡기지 못해

집에서 직접 전신 미용까지 해주고 있다.  

요즘 식욕이 부쩍 줄어 모든 가족이 녀석의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사다 바치는 것은 기본, 뒷다리에 힘이 없어 제대로 밥을 못 먹는 상황을 알고 직접 손으로 습식 밥을 뭉쳐 입에 넣어주고 있는 상황까지 왔다.  

마루가 한 끼 식사만 잘 먹어주면 그날 가족 단톡 방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매달 마루에게 나가는 돈만 해도 꽤 많은 금액이다.

언니와 나는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프리랜서인 나는 녀석을 위해 업무 계약을 계속 연장하고 다른 알바까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돈은 어찌어찌 벌면 된다 하지만 더욱 힘든 건 바로 마음이다.

여러 번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가족과 마찰이 생기고

조금만 아프면 병원에 가려는 우리에게 엄마는

여러 번 화를 내고 ‘이제 보내주자’라는 말을 던지고는 밤새 방에서 눈물을 훔쳐야 했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누나 결혼할 때 함께 식장에 들어가자그때까지 살아야 해 '라고 말한 뒤

‘누나는 40살에나 시집가야겠다~’라고 하지만

아마 올 겨울이 되면 나는 반려동물 장 서비스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녀석이 떠나면 5년, 10년이 넘는 시간을

그리움과 슬픔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누나랑 오래오래 함께 하자, 나의 늙은 개


마루 동생을 데려오겠다는 결심은 올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마루에게서 얻은 기쁨과 사랑의 감정이

시간이 들어 아픔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에.  

그동안 쏟아왔던 정성, 그동안 지출했던 비용,

그동안 고생했던 마음을 생각하면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지기에 너무나 힘이 들고 버거울 뿐이다.

심지어 아픈걸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녀석을 보고 있으면 그 답답함과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세상에 모든 반려동물들이 마루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이 생긴다는 것은 알았으면 좋겠다.

한 생명을, 그것도 말못하는 동물을 책임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단지 예뻐서, 심심해서, 좋을 거 같으니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반려 동물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화가나고 답답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반려동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 있나요?

이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나요?  

그럼에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끝까지 돌봐주세요.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평생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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