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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May 06. 2020

저 한 번만 만나주세요

면접이 아닌 만남을 요청하다


올해 들어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대학 친구가 메인작가인 프로그램에 서브작가로 들어갔고, 일을 유지한 상태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더 기획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으며, 친한 작가 몇 명과 방송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분야의 일에 도전했다.


그리고 5월이 된 지금 지난 몇 달을 돌이켜 보면 결과는 이러하다.


대학 친구와 함께한 프로그램은 어제 종영했고, 기획하던 프로그램은 회의와 자료만 남기고 한 달 만에 불발됐다. 문창과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뒤엉킨 에세이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으며, 스스로 정한 셀프 마감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작가들과 시작한 공동작업은 프로그램 종영으로 빈곤해진 내 통장에 마이너스를 착실하게 늘려주고 있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다.


친구와 함께한 프로그램은 시즌2를 준비 중이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친구를 보며 삶을 보는 내시야를 바꿔야겠다는 깨달음을 많이 얻고 있다.


잠시 기획했던 프로그램에서는 좋은 선배님을 한 분 알게 됐고, 매주 에세이를 쓰며 의지박약인 내가 스스로와의 약속을 이렇게 지킬 수 있구나(물론 엉망진창이지만) 감탄하고 있으며, 작가들과의 공동작업은 지루한 생활에 즐거움과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더불어 이렇게 뭐든 찔러보다 보면 뭐 하나는 먹히지 않겠냐 라는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의 불꽃을 마구 지피고 있다.



행운은 닫힌 곳, 고인 곳에는 오지 않는다
열린 곳, 흐르는 곳에 오는 법이다



최근 보고 있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어찌 보면 뻔하고 누구나 다 아는 보편 진리지만 내가 이 말을 인지하는 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속뜻을 100% 이해하지 못해 배우고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타입이라 시간을 흘리고 삶에 부딪치고 고민하면서 채득 하는 중인데,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얼추 윤곽은 이해했으니 50대쯤 되면 반 이상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래 내 성향은 새로운 도전을 즐기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가벼운 안부 문자 보내기, 집 뒤 공원 걷기, 청소하기 조차 오랜 생각과 큰 각오가 있어야만 실천 가능한 성격이다. 한창 좋은 20대에 일 아니면 집에 고여있기를 선택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와 격리됐던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원하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 건드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바꾼다고 하지 않는가.

수많은 시간과 시도를 거슬러 점점 문을 열고 바깥세상을 기웃거리는 시간이 늘기 시작했고, 귀찮고 겁난단 이유로 외면했던 기회들을 찔러보며 '안 되면 말지 뭐'라는 산뜻한 마인드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변화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을 하나 적어보려 한다.


방송작가를 생활을 하며 딱 한 번 있었던 라디오국 피디님과 만난 이야기다.






라디오 작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지
근데 라디오는 인맥이 있어도 들어가기 힘들어
절대 자리가 안 나거든



막내작가 때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단 내 꿈에 선배들이 해준 답변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라디오는 특성상 제작진 수가 많지 않고 한 번 들어간 사람이 계속 일하기 때문에 DJ는 바뀔지 언정 스태프는 잘 바뀌지 않는다. 정말 여러 가지 상황과 타이밍이 맞아야 안착이 가능하고, 인맥이 있어도 힘든데 인맥조차 없으면 포기하는 게 낫다는 지론이었다. 선배들 중에도 라디오 작가를 꿈꾸며 방송국에 들어온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꿈 많은 막내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라디오국에 들어가고 일할 거 아니에요?"

"그렇겠지. 근데 그게 내가 될 확률은 매우 낮다는 거지"


바보같이 그때의 나는 아 그렇구나 하고 선배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노력해보거나, 다른 시각을 가져볼 생각은 않고 그냥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성인이 되면서 성향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어릴 때 꿈을 말끔하게 포기해 버린 것이다. 어쩜 이리도 가벼운 꿈인지.




그러던 어느 날, 방송작가 협회에 라디오 작가 구인공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정보를 나에게 알려준 것은 라디오 작가 꿈은 포기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라 말했던 선배였다.

말은 현실감각을 가지는 게 좋다고 했지만 막내의 소망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공고가 좀 늘었지만, 그때는 라디오 작가 구인이 공고로 올라오는 것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매우 귀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막상 기회가 눈 앞에 보이니 잡기보다 뒷걸음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공고에 나온 요건에 내가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 이건 절대 잡을 수 없는 기회라고 낙인찍은 상태였고, 쓸데없는 패배감이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메일 보내는데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안 되면 말면 되지 뭐. 그냥 보내봐.

혹시 알아? 내가 말한 그 아주 적은 확률을 뚫을지?"


제대로 된 경력과 능력을 갖춘 다음에 도전하겠다고 쭈뼛대는 나에게 선배는

[메일 하나 보내는 게 뭐 큰 일이라고. 안 되면 말면 되지]라고 하루 종일 이야기했고, 팔랑귀인 나는 점점 선배의 이야기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공고에 적힌 메일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그 아래 구구절절한 편지를 함께 보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대략 이러했다.



[공고 기준과 맞지 않지만, 라디오 작가가 꿈이라 용기 내서 보내봅니다.

합격하지 않아도 좋으니 잠깐만 시간을 내서 한 번만 만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운의 편지와 흡사한 절절한(?) 말들을 메일에 가득 담아 보냈고, 다음날 내가 보낸 메일이 읽음 처리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내 메일에는 아무런 답도 없었다.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었다. 처음에는 메일을 보내보란 선배에게 원망이 들었고, 두 번째는 아무런 경력도 쌓지 않은 내 자신에 화가 났다. 그리고 열흘이 넘어갈 때쯤에는 '대답 없음도 대답이다'라는 말의 뜻을 몸소 이해하며 결과에 순응했다.


그리고 생방송 전날,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다.



[공고에 지원해주신 작가님들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확인하느라 늦었습니다

이번에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좋은 프로그램에서 다시 뵙길 바랍니다]



보통 탈락해도 답장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면접을 보고 합격 유무조차 안 알려주는 경우도 많은데 문자 답장이라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자가 온 번호로 다시 한번 답장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지원했던 작가입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내일 오후에 제가 본사에 들어가는데

시간이 되시면 잠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꼭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았다. 생방송을 하던 첫날과는 또 다른 긴장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고, 만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할 이야기도 없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문자를 보내고 1분 만에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내가 후회와 자괴감에 빠져 노트북 안을 들어가 버리고 싶을 때쯤 답장이 왔다.



[좋아요. 내일 오후 3시에 봬요.]



간절하다고 해서 그 소원이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소 무리한 내 요구에 라디오국 피디님은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주었고,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선배에게 전했다. 일에 지장 없게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아냈고, 다음 날 생방송에 필요한 짐과 원고를 바리바리 싸들고 본사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는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피디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하는 나에게 맞은편에 앉으라고 권했고 미리 준비해둔 커피를 건네주었다. 정작 만남의 장이 열리고 나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고, 말이 입 안에서 맴돌기만 했다. 먼저 만나 달라고 해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보며 피디님은 자리에 앉으라고 했고 공고를 올리게 된 배경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원래 함께 일하는 작가님들이 몇 분 있고 충분히 훌륭한 분들이지만 너무 안에서만 돌아 혹시 밖에 있는 인재를 못 만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공고를 올렸고,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지원해줘서 감사했단 말을 했다. 그리고 면접이 아닌 만남을 요청하는 작가는 처음이라 신기했고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어 내 요청에 응했다고 했다.


지금의 나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궁금한 점들을 물어봤겠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어른과 일대일 대면 자리도 익숙지 않았고 중요한 자리라고 생각할수록 긴장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피디님이 주도했고 나는 그분의 질문에 더듬더듬 방송작가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 어떻게 일을 시작했는지 이런저런 말을 했다. 정신이 혼미해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기억조차 잘 안 나지만 아무 말 대잔치였을 것이 분명하다.


생방송을 앞둔 지라 대화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어렵게 만들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기회는 잡을 수 없었다. 방송시간에 맞춰 방송국에 도착한 메인작가님과 선배들은 나를 보고 보지 않은 척 스튜디오로 향했다. 선배들이 도착했다는 것은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란 뜻이었다.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기회를 허비했다는 자괴감과 아쉬움이 뒤섞였다.


자리에 일어나며 나는 마지막 용기를 내 감사 인사를 했다.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피디님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새로운 도전을 한 덕분에 좋은 만남을 가졌네요."


피디님은 인사 후 라디오국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눈 앞에서 잠깐, 꿈꾸던 세계가 열렸다 닫혔다.

그리고 마법에서 깨어난 나는 본업을 위해 발길을 돌려 스튜디오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라디오국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공고가 많이 올라오지도 않았고, 내 성향이 바뀌기도 했고, 여러 가지 사정상 라디오 작가는 어린 시절의 꿈으로 두기로 했다.


인생은 정말 타이밍이 맞는 것 같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그것을 이뤄볼 기회가 동시에 주어지는 것은 기적과 같다. 그 타이밍을 맞추려면 스스로 움직여서 기회를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정말 우연히 모든 타이밍이 딱 맞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니 말이다.


결과가 없었다고 해서 그 만남이, 내가 냈던 용기와 피디님이 나에게 베풀어준 친절함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에서 머물러있지 않은 두 사람의 접점이 맞았기 때문에 이런 만남과 기회가 생긴 것이고 이런 우연들이 특별한 일없이 흘러간다고 해도 짧은 만남이 준 의미는 계속될 것이다.


한 자리에 머물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던 내가 전보다 새로운 도전을 덜 무서워하고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작은 사건들이 쌓였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늘어지고 귀차니즘이 심한 나와 문 밖의 세상을 궁금해하는 나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안 되면 다른 걸 하며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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