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란 파도에 적응하기 위해선 릴랙스와 패스트 세트가 필요하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최근에 했던 프로그램의 마지막 녹화는 4월 초, 마지막 방송은 5월 초였음으로 공식적인 백수기간은 한 달 남짓이다. 하지만 마지막 녹화 이후 종영까지 남은 한 달은 영상 시사와 후반 작업이 전부였기 때문에 마지막 녹화를 끝낸 시점부터 백수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백수가 된다는 것은 내 경우에는 대략 이러하다.
아침 일찍부터 울리던 단체 톡방의 압박이 사라지고, 자막 작업을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언제 올지 모르는 영상을 기다리는 일이 없어지고, 밤샘 작업 후에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들과 어색한 인사 후 내 방에 자러 가는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데로 하루를 운용하고 카톡 알람이 떠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 없는 조금은 지루한 평화의 세계 (그 평화의 값만큼 통장 잔고는 말라가지만)
평일 낮 인구밀도가 낮은 길만 골라 다니며 느꼈던 자유와 작별한다는 것은 프리랜서로 10년을 일해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것과 유연한 근무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별개의 일인 갓 같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간 이런 삶을 살고도 도통 적응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하다 백수가 되는 건 동기화가 없어도 백수로 살다 방송작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동기화 작업이 필요한데, 지겹다 심심하다 말해도 백수의 삶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평일 오후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점이다. 원래 사랑은 더 좋아하는 쪽이 지기 마련이다. 이제 다음 평화의 날을 위해 작별할 시기다.
원래 하던 데로 내 삶의 일정을 방송 스케줄에 맞추고 바쁘게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여유롭게 하던 운동도 이제는 일 사이에 맞는 시간을 찾아내 구겨 넣어야 하고, 일이 바빠지면 게임 일일 퀘스트는 아예 건너뛰는 날도 늘어갈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쉬는 기간을 알차게 보낸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밀려드는 불안에 휴식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을 갈 수 없었고, 차곡차곡 차오르는 나이와 달리 텅텅 빈 통장잔고도 부담이었다. 성실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친구들과 달리 스스로가 퇴보하는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 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점이 제일 문제였다.
나는 일에 바쁘게 치일 때는 지루한 평화를 간절히 바라고, 고요한 백수의 삶을 살 때는 열정적으로 사는 삶을 동경한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땐 외로워하지만 동시에 여러 카톡창이 울리면 어지럼증을 느끼고, 간절히 바라던 것도 손에 쥐는 순간 지루해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뭐든 쥐고 경험해보고 가져야 속이 시원한데 또 태생은 게을러서 공상의 세계를 빠져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감사해야 한다고 늘 자신을 다독이지만, 마음을 다잡고 돌아섬과 동시에 '이건 또 뭐야?'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성미다.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살며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더 가치 있게 전진해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멋지고 부럽지만 막상 나에게 대입하려 하면 부러움에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까지 시동을 거는 시간은 굉장히 긴데, 몇 번 반복되고 익숙해지면, 권태롭다.
요즘 인터넷에서 핫한 mbti 검사를 해본 적 있다. 이래저래 말이 많지만 가벼운 유머글로 보기 좋은데, 그 검사에서 나는 isfj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관련 글을 보다 소름 돋는 문장을 찾아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많은 사람이랑 있는 건 싫음
아싸 무리에서 인싸, 인싸 무리에서 아싸
게으른 완벽주의자
겉으론 무덤덤해 보여도 속으론 온갖 생각을 다 함
어쩔 땐 내향적이고 어쩔 떤 외향적 성격이 왔다 갔다 해서 나도 내 성격을 잘 모름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청개구리 성향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라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나에 대한 심플한 평가에 감탄을 그지 못했다.
변화를 바라지만 두려워하고 평화를 사랑하지만 지겨워하는 이 마음.
아마 원래 성향에 일을 할 때와 안 할 때의 삶이 너무 다른 직종에서 10년간 일하다 보니 청개구리 성향이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체 없는 두려움에 빠지고 중간이 없이 양극단으로 치닫는 생각이 강해지는 때가 딱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인데, 그럴 때마다 서핑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려고 한다.
지난해 초, 발리에 서핑을 배우러 갔었다.
원래 서핑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하던 프로그램의 종영을 앞두고 여행지를 알아보던 중 '서핑이나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발리행을 택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끝내고 여행을 떠난다니, 참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고 나 역시 그 이점을 한동안 잘 이용한 사람이지만 여기에도 나름 슬픈 이면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예능 트렌드가 바뀐 7-8년 전부터 방송국에는 시즌제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특히 예능이 이 시즌제를 잘 활용했는데, 처음에는 끝이 없는 긴 레이스로 지친 출연자와 제작진들이 리프레쉬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지금의 예능 시즌제는 한두 편만 만들어서 내보내 보고 괜찮으면 고 아니면 나가리란 인식만 남은 수준이다.
프로그램 방영 전 제작 기간은 늘었는데 정작 방영 시간은 줄다 보니 방송이 안 된 기간의 월급은 기획료라고 치부하며 적게는 30% 많게는 50% 이상 깎인다. 6개월을 일해도 방송이 4회짜리라면 한 달만 돈을 제대로 받고 나머지 5달은 50% 이상 깎인 임금을 받는다. 기획료는 누가 만든 건지 정말 찾아서 칭찬해주고 싶다. 물리적으로.
아무튼 이 시즌제가 도입되면서 안정적인 스케줄로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레귤러 자리는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더 일하고 싶어도 프로그램이 짧게는 2회 길게는 8~12회 정도만 하고 사라지니 어쩔 수 없이 빈 시간을 스스로 채우게 됐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에만 매진해 있다가 프로그램 종영과 동시에 버려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작가 일을 시작한 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는데 연휴도 아닌 생뚱맞은 시기에 누군가와 함께 여행 가기란 어려운 일이라 자연스럽게 혼자 여행을 터득하게 됐다. 혼 여행도 몇 번 하다 보니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찾아보다 발견한 것이 서핑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고체계의 흐름으로 충동적으로 발리행을 택했다.
그전까지 서핑이라고 하면 몸 좋은 남녀가 유유자적 파도를 타는 장면 정도만 생각했고 막연히 나는 물을 좋아하고 바다에 떠다녀도 두려움이 없는 편이니 금방 배우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했었다. 추운 겨울을 싫어하는 지라 한겨울을 피해 비행기를 타고 따뜻한 나라로 가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회사-집 루트만 돌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내 삶에도 새로운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안일한 환상은 발리에 도착한 두 번째 날 아침 와장창 깨졌다.
서핑은 해가 뜨기 전엔 새벽에 타는 경우가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해의 영향이 제일 컸는데, 해가 높게 뜨기 시작하면 화상을 입을 위험이 높아지고 바다에 반사되는 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뜨기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새벽이 사람이 적고 강사와 함께한 초보 혹은 고수들이 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덜한 편이다.
이 필연적인 서핑 시스템이 야행성인 나에게는 고문에 가까웠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아침 해는 밤샘 작업 후에 영혼이 털린 상태에서 보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일이라는 강제성이 없으면 무언갈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날 일이 근 10년간 없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이른 새벽에 억지로 일어나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향하는 차 안의 공기는 무겁고, 무겁기만 했다. 새벽에 큰 승합차를 타는 경험이 없진 않았는데 촬영장에 가는 배차가 대부분이었던지라 '사실은 지금 서핑하러 가는 게 아니라 촬영하러 가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생각의 정점은 서핑보드를 내릴 때였는데, 내 키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서핑보드를 머리에 이고(바닥에 끌면 상처가 나기 때문에 지면에 닿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발밑이 푹푹 꺼지는 모래사장을 걷다 보면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에 아직 흐끄무래한 하늘과 애매한 암녹색 파도가 넘실거리는 걸 보고 있노라니 상상과 다른 현실에 서핑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대로 현타가 왔다.
상상 속에 서핑은 쨍한 햇빛과 아름답게 넘실거리는 파도, 컬러풀한 숏 보드였다면 비기너인 나의 첫 서핑은 시커먼 하늘, 더 까만 파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탔을 크고 무거운 롱보드.
첫날에는 그대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본격적인 좋게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서핑을 하기 위해서는 포인트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누군가 끌어줄 순 없으니 직접 보드에 몸을 싣고 두 팔로 열심히 저어 포인트까지 가야 한다. 넘실대는 파도를 보드 하나에 의지해서 두 팔로 저어 가고 있으면 라인업 포인트가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누구 하나 대신해주는 사람도 없고, 시간은 흐르고, 파도는 너무 거칠고 짜서 '뭐야 나 안 할래'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라인업 포인트까지 가는 것도 일이라 몇 번 뒤집어지고 물에 빠지고 파도에 휩쓸리고 나서 어찌어찌 라인업 포인트에 가고 나면 모든 의지를 상실해버린다.
보드 위에 올라타고 파도를 타는 건 더 큰 일인데 파도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일어나 보드 위에 안착해야 한다. 이미 라인업 포인트에 오는 것만으로도 모든 기력을 소진했으니 파도를 타는 건 고사하고 한참 기다려 겨우 타이밍이 맞아서 일어나도 금방 바닷속으로 곤두박질 쳐진다. 바다에 빠졌을 때 보드를 재빨리 잡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물아래 있는데 저 혼자 파도를 만나 삘받은 보드가 해변까지 질주할 때는 억지로 눈을 뜨고 보드와 연결된 발목 끈을 부여잡고 '그만 좀 해 이 자식아'를 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보통 서핑 수업은 2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첫날에는 지 혼자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보드의 성화에 못 이겨(?) 1시간 30분 만에 도망치듯 바다를 빠져나왔다. 벌써 나왔냐고 묻는 강사의 말에 얼버부리고 서핑포인트 바로 앞에 있는 가게에서 탄산음료를 테이블에 모셔놓고 한참을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이걸 열흘이나 해야 한다고? 내가 왜 그랬지?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한국에서는 서핑과 발리를 여름밤 개구리 떼처럼 와글와글 울리며 나를 설레게 한 청개구리가 이제 와선 그냥 다 포기하고 발리 관광이나 다니자는 말로 다시 개굴개굴 울며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서핑 교육과 숙박이 포함된 서핑스쿨 10일 치 비용을 지불하고 온 상태였다. 게다가 여기서 그만두면 지는 거란 쓸데없는 승부욕에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고 깊은 바다에 가라앉는 듯한 기분으로 보냈다.
「죽기야 하겠어? 하자 여자가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다소 가모장적(?)이지만 일하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되새겼던 말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았다.
물론 다잡는다고 마음까지 말끔하게 정리되는 건 아니다. 다음날 새벽, 덜 마른 수영복을 꾸역꾸역 입는 순간 '와 진짜 너무 싫다'는 생각이 한 번 더 머릿속을 지배했고 극혐인 마음을 가득 안고 두 번째 서핑을 위해 서핑포인트를 찾았다.
내가 갔던 곳은 매일 같은 바다를 가지 않고 그날 날씨와 파도 높이를 보고 몇 개의 포인트 중 하나를 골라서 가곤 했다. 그래서 같은 곳을 연속으로 가는 일은 잘 없었는데, 첫날에 간 곳은 동네에서 서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바다로 물도 깊고 파도도 세서 서핑할 줄 아는 사람들은 스릴 있게 파도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두 번째 날은 파도 예보가 좋지 않았던지라 이동 중 몇 번 장소를 바꿨고 숙소와 거리가 꽤 있는 낯선 바닷가에 도착했다. 전날과 달리 서퍼들이 거의 없었는데, 파도가 잔잔해서 거의 장판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는 초보가 타기 좀 더 괜찮을 거야"
서핑스쿨 사장이 말했다. 그날은 장기 투숙 후 개인 기념촬영을 하려는 서퍼 한 명과 첫날 호되게 당하고 서핑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모자 단 4명이었기 때문에 파도가 잔잔해서 누구나 보드를 탈 수 있는 장소를 골라온 것이었다.
찝찝한 수영복과 한층 더 무거워진 보드를 억지로 끌고 바다로 나갔다. 파도가 강하지 않아 전날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편했고 물에 빠지느라 바빴던 나도 나름 요령이 생겨서 내 순서를 기다리며 강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있었다. 그날 나에게 배정된 강사는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었는데, 발리인이었고 영어를 거의 못했다. 나 역시 영어 문외한인 건 마찬가지라 의외로 소통이 잘 됐고, 파도는 너무 무섭고 서핑은 힘들다는 내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릴랙스 천천히"
단어에 가까운 말이지만 단호한 그 눈빛과 마주하며 들으니 어쩐지 마법에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직후 나는 갑자기 거세진 파도에 제대로 뒤집혀 물을 먹었지만 바다 한가운데 보드가 뒤집힌 채로 빠진 상태에서도 전보다 평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릴랙스, 천천히? 아니 파도가 이렇게 치고 오는데 어떻게 릴랙스 해'
물속을 빠져나와 보드에 앉으면서 릴랙스??? 하고 묻는 내 말에 그는 또 한 번 릴랙스를 이야기하며 웃었다. 너 같은 애들 많이 봤다는 느낌의 웃음이었는데, 나처럼 징징대는 초보 서퍼들을 만나고 보드 위에 설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그의 일이니 이런 반응도 여러 번 겪어봤을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즐기라는 말이 주요 의미겠지만 서로 가지고 있는 언어의 한계가 있으니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표현방식을 나름대로 찾아낸 것 같았다.
그다음 질문을 하기도 전에 멀리서 오는 파도를 체크하던 강사가 나를 돌아보며 빨리 자세를 잡으라고 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온 파도에 나도 급하게 보드 위에 납작 엎드려 파도를 탈 준비를 했고, 릴랙스는커녕 패스트를 연발하는 강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죽어라 빠르게 팔을 돌렸다.
"빨리빨리! 패스트 패스트! 고!"
고는 보드 위로 일어서라는 신호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몸을 일으켰고 보드 위에 올라타는 데 성공했다. 아니 릴랙스라며 팔은 또 왜 빨리 저으래라고 하고 싶었지만 보드 위에 서서 파도를 타는 순간 머릿속에 엉켜있던 복잡한 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파도는 높지 않았지만 불규칙한 힘으로 뒤에서 계속 나를 밀었고 드넓은 바다 위에 한 칸짜리 보드 위에 선 나는 그 좁은 세상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무릎을 접고 두 팔로 균형을 잡으며 요란을 떨었다. 파도를 탔다는 말이 무색하게 격하게 흔들거리다가 10초 만에 바다로 곤두박질 쳐졌고 그때 내 뒷모습은 멋진 서퍼라기 보단 술에 취한 사람과 더 비슷했을 것이다.
드디어 파도를 탔다는 성취감에 빠질 새도 없이 나는 머리 위에서 날아가려는 보드를 급하게 찾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온 힘을 다해 보드를 쥐고 고개를 들어 수면 위를 바라봤다. 물 안에서 보는 해수면 위는 햇빛으로 빛났다. 파도가 칠 때는 보드 위에 올라가도 다시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때를 기다려 보드 위로 올라탔다. 고개를 돌려 라인업 쪽을 바라보니 강사가 빨리 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그 손길에 이끌려 나는 다시 보드 위에 찰싹 엎드려 방향을 잡고 열심히 팔을 저어 라인업으로 향했다.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파도를 탔다는 것만으로도 손끝 발끝까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릴랙스라며! 또 패스트????"
"시간 없어 빨리빨리~ 릴랙스 앤 패스트"
라인업에 도착하기 무섭게 강사는 내 보드를 해변 방향으로 다시 돌렸고 한 번 흐름을 타니 쉴 틈이 없이 파도가 밀려들어왔다. 그날 나는 2시간을 꽉 채워 릴랙스하고 패스트 하게 서핑을 즐겼다.
아 정정한다. 즐긴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타기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도 사이를 휘몰아치며 다녔다.
지금도 그 목소리가 떠오르면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무엇이든 하게 된다.
릴랙스 앤 패스트
청개구리를 다루는 최적의 멘트가 아닐 수없다.
아직 세상을 배워가는 중인 청개구리는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미리 걱정하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라인업에 앉아 파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잘 릴랙스하고 기다려야 파도가 왔을 때 빠르게 움직여 파도를 탈 수 있다.
이번 파도는 좀 덜 높고, 덜 거칠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