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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Dec 22. 2021

이 세계 짱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예비 3번 #2

우물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


서울역을 제 발로 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전에도 서울역을 찾은 적은 있지만,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기 때문에 나 혼자서 이곳을 찾는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내가 선택한 여행은 전라도 여행으로 내일로 티켓을 이용하기로 했다. 티켓 하나로 일주일간 기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을 따르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여행하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자리 주인이 오면 비켜줘야 하는 입석 제도였지만 그때는 처음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에 모든 게 낭만적이라고 여겼다.


10년이 훌쩍 넘은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옛날에 사용하던 클라우드를 통해 확인해보니 [담양 → 광주 → 순천 → 곡성 → 전주]로 이어지는 루트로 여행을 했었다. 아마 부산은 친구들과 다녀와봤기 때문에 안 가본 곳을 가려고 하다 보니 전라남도 쪽을 도는 여행을 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여행을 돌이켜보면 두 가지 감정이 떠오른다. 평온함과 긴장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낯선 길을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은 상반된 두 감정을 준다. 이곳에선 내가 입시에 실패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겉으로 보기에는 여행을 즐기는 여행자 중 하나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가족, 친구들 아무도 나에게 입시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지만, 그땐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있다는 자체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아마 내가 나를 눈치 주는 게 가장 컸을 것이다.


내가 떠났던 여행은 내일로 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루트 중 하나였는데 여행도 해본 놈이 해본다고 루트를 짤 수 있는 능력이 안 됐으므로 여행 카페를 보고 남들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을 참조해서 다녔었다. 루트를 따라갈 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적당히 괜찮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충 눈에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외딴 길을 혼자 걸을 땐 긴장되다가,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이 녹았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고 차분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며 마음의 평화를 느낀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메타세쿼이아 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리고, 오래된 성터를 따라 걸으며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고, 습지를 배경으로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바라봤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환경과 순간이 있는데, 왜 나는 그동안 이런 걸 느끼지 못했을까? 왜 모든 게 처음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활동하고 바라보고 살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가 매 시간, 매 분마다 느껴졌다.


물론 그 질문에 해답을 찾기엔 너무 어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에, 저녁에는 숙소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사람들과 부딪치고 싶지 않아서 모텔이나 1인실을 이용했다) TV를 보며 과자를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집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고민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평소에 보지도 않던 예능, 드라마를 보며 의식적으로 웃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웃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여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매일 짐을 싸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낯선 공간을 다니다 보니 차츰 머릿속이 비워지고 생각 정리란 걸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원래 내 위치에서 물리적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왔을 뿐인데, 어제까지의 큰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매우 하찮게 느껴졌다.


불합격했는데 뭐, 친구들은 합격하고 취업했는데 나만 2년 전과 그대로인데 그게 뭐.

지금부터 하면 되지.


좁은 나의 세계에 있을 때는 엄청나게 크던 절망이, 살짝 각도를 틀었을 뿐인데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다니. 심지어 집에 있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게 과자를 까먹으며 TV를 보고 있는데 왜 생각이 바뀌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내가 크게 절망하지 않아서, 나에게 찾아온 이 일들을 너무 큰 불행처럼 여기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2년 동안 시간을 허비하는 줄 모르고 살았듯, 이때 나에게 닥친 일이 (전후 사정 다 빼고) 크나큰 불행으로 느껴지고, 나만 안 풀리는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제자리에 앉아 허비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때 방송작가 구인 공고가 어디에 올라온댔었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문득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는 방송생활의 열악함에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면서도 입시를 포기하고 아카데미에 들어갈까 고민하던 나에게 방송작가 구직 사이트가 있다고 알려줬었다. 인터넷으로 구직사이트를 검색해서 올라온 목록들을 살펴보고, 작가로 지원하려면 이력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에게 제대로 된 이력서가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포털사이트에 검색해서 적당히 뜨는 이력서를 골라다가 생년월일과 출신 학교를 적고, 빈 공간에는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긴 편지를 썼다. 경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으니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었는데, 텅 빈 이력서로 지원하는 건 어쩐지 그래서 그냥 구구절절 편지를 쓴 것이다.


당연히 경력도 없고, 대학 졸업 후 2년이나 공백이 있는 내 이력서에 답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곳이 있으면 계속 메일을 보냈고, 정말 잘할 수 있다 노력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다 3월 중순, 한 프로그램에 면접을 보게 됐다. 저녁시간에 하는 생방송 정보 프로그램이었는데, 경력 있는 막내를 찾고 있지만 편지를 구구절절 써서 보냈길래 한 번 불러봤다고 했다. 입시 면접은 많이 봤지만, 방송작가로서의 면접은 처음이라 바보처럼 어버버 거리다 나왔고, 그 면접에서는 탈락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면접을 봤던 작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면접을 봤던 자리에 뽑혔던 작가가 일주일 일하고 그만뒀는데 당장 와서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방송 용어는커녕 방송작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바로 노트북을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방송작가가 되었다.


예비 번호 3번이 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여전히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을까?

방송작가가 되긴 했을까? 아니면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이 어땠을지 상상하는 건 나름 즐거운 일이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 있는 나는 그때 예비 3번을 받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덕에 20살 때부터 갇혀있던 좁은 세상을 열고 나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하지만 20대 초반에 2년 펑펑 논게 뭐 대수라고. 좀 놀아도 되는 나이인데.

그래도 이만하길 참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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