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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Jan 12. 2022

[저녁 생방송] 막내는 왜 매주 전쟁을 해야 할까?

거슬리지 않는 '센스'가 덕목이었던 막내 생활


오전 9시 30분. 사무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회사 문을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편집실 쪽에는 새벽까지 밤샘 작업을 한 흔적과 다른 팀이 급하게 촬영을 나가느라 치우지 못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우리 팀 책상 역시 온갖 서류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재빨리 내 자리 컴퓨터를 켠다. 텅 빈 사무실에 오래된 컴퓨터가 버벅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 울린다. 느린 컴퓨터를 상대하는 일은 매우 답답하지만, 고요한 사무실에 나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순간만큼은 컴퓨터가 느린 게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잠깐이라도 이 여유를 즐기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계속 멍 때리고 있을 수는 없다. 심장이 서서히 빨리 뛰는 거 보니 전쟁을 치를 시간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화면에 꽉 차 있는 한글파일 중에 전날 마지막으로 수정한 아이템 리스트를 열고 내용을 다시 찬찬히 확인한다. 최종 내용이 맞는지, 빠진 코너는 없는지 체크하고, 새벽에 선배들이 보낸 메시지가 없는지 확인한다. 실수하면 끝장이기 때문에 최종 내용이 맞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정각이 가까워져 있다.


9시 59분. 업로드 과정에서 로그인이 풀리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재로그인을 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한 표준시계를 화면 구석에 켜 둔 채 정각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10시. 정각이 됨과 동시에 업로드 버튼을 누른다. 예전에 약간의 시차를 생각해 59분 58초, 59초대에 업로드를 눌렀다가 시간 오류로 큰 사달이 난 적이 있으므로 정각 이전에는 가급적 업로드를 누르지 않는 것이 나만의 비법이다.


업로드가 완료됐다는 글이 보이자마자 게시판으로 돌아가서 글 목록을 살펴본다. 내가 올린 글 옆에 업로드된 시간이 [10시 00분] 임을 확인하고 나면 1차 관문 통과. 그다음에는 정시에 올라온 글의 숫자를 확인하고 내 글이 몇 번째인지를 체크한다. 6개의 새 글 중 2번째. 이 정도면 2차 관문도 통과.

이제 남은 건 먼저 올라온 팀의 아이템 중 우리 팀과 겹치는 내용이 있는지만 확인한 후, 다른 팀이 올린 아이템 내용도 파악하면 된다.


6팀이 한 달치 아이템 분량을 올려놨기 때문에 내용이 꽤 많고 파악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팀에서 무슨 아이템 올렸니?''&&아이템 겹치는 거 있니?'하고 물어봤을 때 바로 답을 못하면 혼나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하고 나 혼자 보는 아이템 페이퍼에 모든 팀의 아이템 내용을 압축해서 정리해둔다. 모든 내용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선배들이 물어보면 바로 이 페이지를 보면 내용을 얼추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선배들도 한 페이지로 압축된 내용을 확인할 때는 관대하게 기다려준다. '쟤가 이제 응용을 하는구나'하고 대견하게 보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템을 체크하고 나면 선배들에게 하나하나 문자를 보낸다. 이것 역시 누가 시킨 적은 없지만, 가끔 '왜 말이 없니?'하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쪽에서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게 속편하다. 단체방이 없던 시절이라 한 명 한 명 내가 헷갈리거나 빼먹은 선배는 없는지 체크하며 문자를 다 보내고 나면 한숨 돌린다.


그나마 이번 주는 운이 좋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무리 없이 했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템도 선배들이 말한 최신 버전이고, 아이템 게시판에 정각에 올렸으며, 우리 팀과 겹치는 아이템이 없다, 혹은 있더라도 우리 팀이 먼저 올렸으니 컨펌이 어떻게 나든 내 잘못은 아니게 된다. 이제 모든 것은 내 손을 떠났고, 컨펌 후 진행 여부만 기다리면 된다.


일주일 중 가장 큰 일을 마쳤으니 한숨 돌리고 싶지만, 쉬는 건 사치이기 때문에 바로 몸을 움직인다. 전날 시청률표를 뽑고, 코너별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을 기록해둔 내용을 보며 그래프에 줄을 긋는다. 코너명과 아이템을 적고 파일철에 보관해 팀장님 자리에 올려두고, 동시간대 타 방송사에서 한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아이템을 확인한다.


이쯤 되면 연차가 낮은 순서대로 선배들이 하나둘 출근한다.

'막내야 우리 밥 먹고 일할까?' 하고 말하면 미리 생각해둔 식당 몇 개를 이야기하며 어디에 주문할지 선배들의 의견을 받아 식사를 주문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이미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본격적인 일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한 달에 80만 원 받는 막내시절 내가 매주 치렀던 수많은 전쟁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것도 매우 평화로운 편에 속하는.



「6시 내 고향, 생생정보통, 생방송 오늘 저녁, 생방송 투데이」


2010년대 초에는 평일 저녁에 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이 꽤 인기였다. 각 방송사마다 시그니처로 미는 방송들이 있었고 시청률과 화제성도 높았다. 저녁 생방송 프로그램에 맛집이 소개되면 바로 검색어에 오르고 수많은 식당에 '00에 소개된 맛집'이라는 플래카드와 방송화면이 가득한 액자들이 걸렸었다. 방송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경험한 것도 이 시기였는데, 10프로 전후로 나오면 평타, 순간 시청률로 치면 10프로 후반대가 나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저녁 생방송으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저녁 생방송이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방송계, 특히 교양에서 생방송을 지칭할 때 [아침 생방송], [저녁 생방송]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아침 생방송은 모닝와이드, 아침마당처럼 오전 7시부터 12시 사이에 진행되는 방송들을 지칭한다. 두 방송에 차이가 있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겉으론 비슷해 보여도 톤 앤 매너부터 다루는 소재까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나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면서 몸소 그 차이를 느꼈는데, 아침 생방송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루겠다.


보통 저녁 생방송하면 떠올리는 것은 '맛집', '여행'이다. 하루에도 여러 개의 맛집이 나와서 시청자를 유혹하고, @@PD, %%작가가 출연해 아름다운 자연과 정겨운 시골 풍경을 소개한다. 특별한 비법으로 한 달에 10킬로를 뺀 주부가 등장해 자신의 건강 비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쪽은 아침과 좀 더 가깝다)


전국 식당의 맛집화를 이룰 기세로 수많은 식당이 소개되다 보니 아무 데나 찍는다는 인식도 있지만, 의외로 내부에서는 아이템 선정에 꽤 치열하다. 일단 경쟁자가 매우 많은데, 일주일에 5일, 동시간에 방영되는 프로그램만 4개(심지어 종편, 케이블은 제외해도), 각 프로그램마다 요일별로 담당 제작팀이 따로 있다. 이 모든 팀 수를 어림잡아 계산해봐도 20팀이 넘는다. 일주일에 한 번 방송을 찍어내듯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20팀의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끝없이 경쟁을 해야 한다. 방송에 소개된 집이 또 나오고, 언젠가 봤던 시골 장터가 방송에 또 나오는 건 이런 경쟁 체제 때문이다.


솔직히 3사 방송사의 저녁 프로그램을 한 코너씩 뽑아서 섞어도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한 곳에서 독점하는 것보단 건강한 경쟁을 하는 쪽이 낫다고 본다. 그래야 발전도 있으니까. 문제는 내부 경쟁이다. 시청자가 보기에는 오늘 방송이나 내일 방송이나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요일별로 쪼개진 작은 팀들이 계속 경쟁하며, 누가 더 좋은 성적을 받는지 비교하는 무한 경쟁의 장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일할 때만 해도 매달 각 팀의 수장을 본사로 소환해 전체 회의를 열었다. 본사에서 여는 이 내부 회의의 목적은 분명했다.

[잘한 팀에게는 상을, 저조한 팀에게는 경고를]


각 팀의 대표인 메인작가와 팀장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 달, 혹은 분기별 시청률 그래프를 공개하고 어떤 팀이 성적이 좋은지, 어떤 팀이 성적이 저조한 지 적나라한 평가를 한다. 시그니처 코너가 있거나 시청률 대박을 터뜨린 팀은 칭찬과 포상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저조한 팀은 경고를 받고, 이 경고가 누적되면 제작사가 아예 바뀌는 사태가 벌어진다.


나 같은 막내들이 우리 팀 방송이 아닌 다른 팀의 방송까지 모니터 해서 매일 시청률표를 뽑고 그래프를 그리는 이유다. 어느 팀의 어떤 아이템이 소위 말해 '먹혔는지' 확인하고 우리도 그 방향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실시간에 가까운 평가, 적나라한 성적 비교, 빠른 처분.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즉시 처형의 현장을 1년 넘게 지켜보는 동안 몇몇 제작사가 경고를 받거나 바뀌는 상황을 눈으로 목격했다. 성적이 고만고만했지만, 가끔 시청률 대박을 내던 우리 팀은 교체 위기는 겪지 않았지만, 더 좋은 성적을 위해 더 좋은 아이템을 찾아야만 했다. 매주 생방송을 만들어 내는 일은 그대로 하면서 말이다.


모든 제작사의 사정이 똑같다 보니, 하루하루가 숨 막히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날들이 매주 이어졌다.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 밤늦게까지 일하는 건 기본값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일하다 보니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제작사에서 한 아이템을 진행하다 뒤늦게 알게 되거나, 한 아이템을 가지고 자신의 팀에서 하겠다고 싸우는 사건들이 생긴 것이다. 시청률이 보장되는 [좋은 아이템]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결국 이것을 차지해야만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제작사간의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좋은 아이템을 위해 우리 팀원들이 그간 고생한 걸 생각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는 게 각 팀 수장의 입장이었고, 프로그램 전체를 봐야 하는 본사 입장에서는 시청률에 유리한 방향대로만 손을 들어주다 보면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건강한 경쟁은 좋지만, 내부 싸움이 되면 득이 될 게 없었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본사에서 묘안을 하나 냈다. 프로그램 제작진만 가입할 수 있는 카페를 만들어 한 달치 아이템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아이템도 아무거나 적으면 한 팀이 계획 없이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섭외 진행상황이나, 어떤 구성을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했다.


매주 정해진 날짜에 아이템이 올라오면 그때부터 본사에서 아이템 내용을 보고 하나하나 컨펌을 진행했다. 아이템을 컨펌할 때도 룰이 있었는데 [중복된 아이템은 먼저 올린 팀에게 넘어간다], [먼저 올렸으나 구성 내용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다음 팀에게로 넘어간다], [시의성이 중요한 아이템의 경우 방송일자가 가장 빠른 팀으로 넘어간다] 등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소모적인 내부 충돌을 조금 줄일 수 있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기회가 갔고, 기회를 잡는 건 준비된 자의 몫이라는 논리가 아주 잘 적용된 예였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너무 많은 부담감이 팀 내 최약자인 막내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아이템을 정리하고 올리는 것은 전적으로 각 팀 막내의 몫이었고, 실수든 사고든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아이템을 늦게 올려 컨펌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에 대한 책임을 막내가 모두 뒤집어쓰게 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막내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는 팀이 있겠냐만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팀원이 일주일간 이룬 노력이 내 잘못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이템을 올리는 날 전후로 다른 팀 막내들과 했던 메신저 내용을 떠올려보면 다들 위가 아프고, 도망가고 싶고, 너무 힘들다는 말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같은 시기를 겪은 막내 중 지금까지 방송계에 붙어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막내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다 이런가 보다'하고 버텼을 뿐이지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진작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사회 초년생 때 내가 가졌던 부담감은 내 위치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무거웠다.



물론 어느 일이나 초년생 때 힘든 건 똑같기 때문에 이 경험이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궁금하실 누군가를 위해 생방송 데일리 프로그램 막내 때 했던 일들을 짧게 압축해봤다.



간단하게 적은 내용이 이 정도다. 작가라고 하면 흔히 생각하는 글을 쓰는 행위는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후부터 가능하고 막내 때 내 일의 99%는 선배들을 서포트하고 방송을 매끄럽게 진행하는데 필요한 보조역할에 가까웠다. 여기에 자잘한 심부름, 식사 주문 등은 너무 길어서 넣지 않았다.


업계 특성상 배우면서 일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부당하긴 해도 어느 정도는 일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넘길 수 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많은 걸 보고 배웠으니까.


다만 이 시기를 돌이켜보며 내가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모든 과정을 누군가의 인수인계 없이 알아서 습득해야 했다는 점이다. 내가 유독 운이 없었던 것일 수 있지만 나는 막내 때 단 한 번도 전임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전임자를 만나지 못했으니 내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선배들은 자기 일을 하기에도 바빴으므로 질문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결국 '적당히', '알아서', '요령껏' 일을 배워야 했다. 매일이 급박한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작은 구멍은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3개월 정도는 매일 '너 이거 왜 안 해놨어?', '모르면 물어봐야지'하고 혼났고, 눈물을 쏙 빼고 나서야 '아 이것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하고 체득하는 과정을 거쳤었다.


그 시절에 내가 일을 배웠던 방식은 눈을 가리고 커다란 코끼리를 더듬어가며 모양을 맞추는 것과 비슷했다. 열심히 얼굴 윤곽을 만져서 긴 코와 커다란 귀를 알아채더니, 왜 다리는 안 만졌냐는 상황이 반복됐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내가 받은 월급은 겨우 80만 원. 조금 경력이 생긴 후에 '다른 데보다 잘 맞는 거야'라며 받은 돈이 100만 원 남짓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선배들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모든 건 시스템의 문제였지, 선배들이 인격적으로 사람을 무시한다거나 일부러 나를 괴롭히고자 했던 의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몰라서 실수하는 문제의 80% 이상은 선배들 선에서 해결해주었고, 정말 눈에 띄는 실수에는 혼낸 후에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누구나 힘들다는 위로도 잊지 않았다.


이제 그 선배들과 비슷한 연차가 되어보니 매주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하고, 촬영을 보내고, 생방송 원고를 쓰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든 건 시스템과 인력 부족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프로그램들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고, 여전히 매주 맛집이 쏟아져 나오지만, 작가 방에서는 늘 사람을 못 구해서 안달인 구인 글이 올라온다. 택도 없는 스케줄에 사람들을 몰아놓고 방송을 만드니 버티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나는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라고 말하는 작가님이 있을 수 있지만, 저녁에 마음 편히 퇴근해서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쉬는 날 아이템 걱정을 안 해도 되는 때가 언제였는지 반문하고 싶다. 생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작가는 쉬는 날도 쉬면서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프로그램이 돌아가니까.


생방송 프로그램이라고 제작과정까지 굳이 라이브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은, 내가 일했던 1년 넘는 시간을 압축해서 말하자면 트루먼쇼 같았다.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순간은 전혀 없었고, 언제나 다음 방송, 그다음 방송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해야 했다.


쉬는 날에도 언제 선배가 불러서 일을 시킬지 몰라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고 이 시기에 일을 제외한 모든 사생활이 조각나서 한참 뒤에 다시 이어 붙이느라 지금도 고생 중이다. 시키는 일만 하면 됐던 나도 이 정도였으니, 코너를 맡고, 프로그램 전체를 담당하던 선배들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물론 힘든 만큼 생방송만이 주는 짜릿함이 있긴 하다. 내가 있는 스튜디오에서, 눈앞에 아나운서가 말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TV 방송을 타고 나가는 것을 확인할 때의 짜릿함, 방송이 끝난 직후 '다 털었다'는 홀가분함, 그리고 내가 늘 보던 프로그램 작가로 내 이름이 나올 때의 뿌듯함.


일주일을 마음고생해놓고 방송하는 그 한 시간이 주는 짜릿함이 어마어마해서 생방송이 끝나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기쁨에 가득 차서 집에 돌아갔다. 생방송이 끝난 직후엔 아무도 막내를 찾지 않기 때문에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노래를 들으며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참 이렇게 생방송이 주는 기쁨이 큰데, 제작하는 시간에 조금만 더 여유를 더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한 이유가 있을 테니 이 이상 말을 얹진 않겠다. 나에게 다시 생방송을 하라고 하면 그 짜릿함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알지만 못할 거 같단 말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부담감과 짜릿함이 공존한 채 막내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점점 이 세계에 익숙해졌다. 6개월 차 즈음부턴 알아서 몸이 패턴대로 움직였고, 1년쯤 됐을 때는 웬만한 패턴에 있는 일은 선배가 시키기 전에 움직이고, 아이템을 찾다가 생긴 의견을 낼 수 있는 후배가 됐다. 그리고 선배들 사이에서 나의 입봉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막내 생활에 익숙해졌을 뿐, 입봉은 너무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봉'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큼 잔뜩 쫄아버렸다. 내 코너에 원고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팀이 해체됐다. 시청률 부진도 아니고, 방송 외적인 일로 순식간에 모든 게 끝나버렸다. 어떻게 보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거지만, 1년 반 동안 못 쉬고 일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모든 것이 끝난 게 좋았다.


일단은 갑자기 생긴 휴식을 즐기고, 그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둬도 매일 저녁 TV에서는 그 방송이 나왔고, 매주 참여하던 전쟁에서 전사 하나가 손을 들고 빠져나온다고 해서 세상은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치열하고 허무했던 나의 막내 시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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