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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Aug 06. 2021

1990년 2월, 그 심장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조덕배의 '꿈에' 노래 가사가 집에 돌아와서도 대학로에 있는 것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첫 미팅은 모든 이에게 나처럼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텐데....

누구나 나처럼 큰 심장소리를 느낀 건 아닐 텐데....


다음 날 넋 나간 사람처럼 학교를 등교했고, 미팅 나갔던 친구들이 내 책상으로 몰려오더니 시시콜콜,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본다. 그중 우기기 친구가 그의 짝이었던 이성 친구에게 제안해서 나와 G까지 총 4명이서 다시 주말에 돈암동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소위 애프터 신청을 한 것이다.

그냥 소중한 네 잎 클로버처럼 책갈피에 해프닝으로 접어두려 했는데, 그게 연이어질 줄은 몰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난 다가오는 주말까지 일주일 동안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 블루클럽을 가던 내가 체인점 미용실로 가게 되었고,

짧은 머리에 헤어젤을 바르기 시작했으며,

명동까지 가서 Michico London, 헌트 같은 브랜드를 친구들과 방과 후 쇼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발목까지 올라오는 화려한 색깔의 단화도 거금을 주고 살 정도였으니까. 엄청난 일탈 행동이었다.


주말 돈암동 카페 앞이다. 헤어스타일과 의상에만 신경 쓰느라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두 여학생이 앉아 있었는데 첫 미팅 때의 대학로에서의 G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단정한 헤어스타일과 헤어밴드, 품위 있어 보이는 더플코트에 하얀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멋 부리고 깃만 칼처럼 세운 부자연스러운 수탉 모습이었다.

G는 담배를 끝내 피우지 않았고, 나는 담배를 연거푸 피웠다. 입안에서만 겉돌다 내뿜는 담배 연기를 G는 얹잖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4명의 대화는 오래가지 못하고 끝났다. 아마도 우기기 친구가 G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추파를 보낸 점, 내가 이전  미팅의 모습과 너무 달라진 점 때문이었을까...


카페 밖으로 나오니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난 우산이 없어 G 우산 안으로 들어가면서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G는 입술을 깨물더니 빗 속으로 홀로 뛰어가 버렸다.

멈추지 않고 뛰다가 아무 버스에 성급히 올라타고 사라졌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심장소리의 마지막이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플랫폼에 서 있는데, 거울에 비친 내 멋진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한쪽 손에 들고 있는 핑크색 땡땡이 우산은 유독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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