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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21. 2020

글렌코(Glencoe)

2편 스코틀랜드에 서다.

#로몬드 호(Loch Lomond)

영국 본토에서 가장 큰 호수라는 "로몬드 호". 우리나라 여의도보다 약 9배나 더 큰 규모라고 하는데,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와 로우랜드를 구분하는 중요한 지질학적 경계로도 유명하다. 우리의 당초 계획은 호숫가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코닉힐"에 올라 숲과 호수, 마을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이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호숫가 근처의 낮은 숲길을 오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스코틀랜드의 날씨는 한치도 예측할 수 없었다. 걷는 내내 흐렸다가, 보슬비가 내리고, 또 날이 개고, 이따금씩 세찬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뿌옇게 떠오른 구름과 자욱한 안개가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와 어우러져,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오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산책했던 "밀레니엄 포레스트". 비에 젖어 더욱 싱그러웠던 풀내음과 촉촉했던 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조성된 숲길이 매우 한국적이어서, 우리 지금 광교산에 올라온 건 아니지?라는 우스갯소리를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꼬맹이가 나중에 여기가 진짜 스코틀랜드에 있는 숲이 맞냐고 물을까봐 다른 뷰는 제쳐두고 안내 푯말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운 좋게도 호숫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꼬맹이가 엉겅퀴 꽃을 발견했다. 이렇게 꼬맹이의 스코틀랜드 국화, 엉겅퀴 꽃 찾기 미션도 성공!


#글렌코(Glencoe)

"글렌코"하면, 그냥 단순하게 "스코틀랜드만의 야성적 풍경이 보고 싶다면 글렌코로 가라"라는 문장으로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고 난 뒤 나에게 더욱 강하고 야성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글렌코는, 역시나 무서울 만큼 산세가 험했고 자연 그대로의 거친 성질을 온전하게 지니고 있었다. 날씨 또한 그랬다. 글렌코도, 또 그 위의 하늘도, 무언가에 의해 보드랍게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상태처럼 보였다. 해가 쨍하게 올라왔다가도 순식간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요상하고도 이상한 하늘은 원시적인 글렌코의 모습에 발맞춰 거칠게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글렌코를 여행할 땐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온다 해도 크게 상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안개가 자욱한 하늘과 궂은 날씨는 어쩌면 글렌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으므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하늘의 모양을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고, 날씨에 따른 풍경과 분위기 그리고 그로 인해 요동치는 나의 감정들로 지루할 틈이 없게 된다.

또 하나, 잔인하게 들려오는 "글렌코 학살"의 역사도 이런 날씨에서 더욱 의미를 발한다.(1692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왕이 된 윌리엄 3세에게 기한 내에 충성 서약을 하지 않았다는 빌미로 스코틀랜드 맥도널드 가문의 사람들이 글렌코에서 무참히 죽임을 당한 사건을 "글렌코 학살"이라고 한다.) 잉글랜드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저항 정신과 슬픈 역사를 이 거친 산의 지형과 변덕스러운 날씨가 대변해 주는 것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하늘과 그에 따라 역동적으로 모습을 바꾸는 산의 모습은 진짜 제대로 된 글렌코를 눈과 몸에 담아 갈 수 있게 해 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찾은 글렌코. 금세 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잠시 동안 쨍한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매끈하면서도 울퉁불퉁한 근육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렌코의 민낯을 감상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댔다. 글렌코가 내뿜는 거친 성질의 야성적 풍경을 사진에 오롯이 담을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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