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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리닝소년 Nov 17. 2021

잡다한 글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

최근 여러 sns를 하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아는 사이였다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무얼 하고 사는지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한 중학교 동창이 요즘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사진으로나마 접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동네는 학군도 별로 좋지 않고, 여러 분위기로 봤을 때 그렇게 좋지 못한 동네였다.


그래서 주변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흡연을 했던 친구도 있었고, 중학교 때는 직접 잉크를 가져와 팔에 바늘과 실로 문신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어쩌면 힙하지 못해서, 어쩌면 공부나 하던 범생이여서 그런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지만, 그때 친했던 친구들과 만나면 우린 그런 길로 빠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어쨌든 그런 동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래서 정말 막장을 달리는 양아치부터 평범한 친구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꼭 그래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였을까? 우리 동네에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작게는 제일 잘 나가던 다른 학교의 짱에게 수금을 하기 위해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돈을 걷기도 했고, 선배들이 옷을 빌려달라고 하고는 돌려주지 않는 일도 빈번했다.


나도 친구들과 하교하다가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돈을 뺏기기도 했고, 한 번은 당시 유행하던 옷을 빼앗긴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집 옆집에는 나와 동갑인 한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인해 같은 반 사람 몇 명의 이름을 유서에 적고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시에 소위 말하는 잘 나가던 한 사람의 계정을 보게 되어서였다.


물론 그 친구(딱히 호칭이 애매해 친구라고 하겠습니다.)는 이런 사건의 주동자는 아니었지만 우리 학교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 친구의 남자 친구였던 선배가 나에게 옷을 빌려달라고 하고 여러 핑계를 대며 돌려주지 않았을 때도 있었고, 흡연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친구의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로 가득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 친구의 모습은 내가 중학생 때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이 돼서 주말이면 교회학교에 나가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봉사하는 모습이 게시물에 가득했고, 여러 게시물들을 봐도 다른 20대 내 또래의 여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 친구 주변에 있던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모습에서는 그 누구도 그때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평범한 20대 중반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어두웠던 과거를 파헤쳐 그들의 실체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까지 당해야 할 주요한 가해자는 아니었으니까, 단지 그 가해자들의 친구였을 뿐이고, 조금 더 빨리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중학생 시절 옆집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했던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내가 자살한 그 친구와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내가 그 친구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시절 그런 선택을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누군가는 그 시절을 다 잊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아이러니했다.




누가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중, 고등학교 때문에 힘든 사람들에게 굳이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보면 중, 고등학교 시절은 그냥 좋은 시절이지 별거 아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렇다.


그 시절은 별거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런 힘든 경험을 할 필요가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시기의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곳에서 도망치고 검정고시를 보건 말건 내 주변 사람들을 더 좋은 사람들로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를 추억하는 이유는 정말 그때의 기억이 좋았다기보다는 그 시기를 함께한 사람들을 추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중학교 때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친구가 있어 몇 달을 고생하다가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그 이후로는 별 일이 없었다.


나는 잘 해결되었지만, 나에게 자식이 있고, 그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기는 인생에서 정말 일부분의 시간이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해 봤자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심지어 가해자들은 기억도 못하는 시기다.


그래서 혹시 그런 시기를 보내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그런 시기를 보냈던 사람이 있다면 다 잊으라고, 어차피 지금은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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